두 번째 가톨릭 미술전에 출품한 후 두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첫째로 성예술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요 둘째로는 사제와 예술인 사이의 거리에 대한 점이었다. 나는 성예술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적 생활을 갖는 모든 예술인의 창작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예술이 된다. 참된 예술가는 진리의 증인으로서 모든 진실한 작품은 믿음에 바탕되어 있는 것이다. 완벽에로 향한 끈질긴 노력과 사랑이 쏟아진 작품은 신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찬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둘째로 현대에 와서 교회와 예술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사제와 예술인 사이에 거리를 뜻하기도 한다. 나는 프랑스에 있을 때 수많은 현대 건축의 성당들을 보았다. 내부의 장식도 물론 현대 미술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색유리 벽화 모자이크 따피스리 등이 현존한 대가들에 의해 장식되고 있다. 중부 프랑스의 어느 산간에 지은 성당은 샤갈·루오·마띠스·레제·바젠느 등의 대가들의 작품으로 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새로운 성당을 짓는 곳에서는 좀 더 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교회는 기도와 명상의 분위기를 줄 수 있어야 되므로 현대 예술이 그러한 분위기를 만족시켜 주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현대 조형예술은 정신적 감성적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신비의 직접적 매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의 직접적 감동을 통한 신과의 만남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3년 전 제주도와 전라도 지방을 다니며 벽화를 그릴 기회를 가졌었다.
처음 시골성당에 돌어서면 본당 신부님은 19세기 서양에서 건너온 양식의 성본 같은 것을 내주며『이렇게 생긴 예수님을 그려 주시오』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이런 것은 한 번 보면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그림입니다. 좀 더 상징적인 그림으로써 교인들이 그 뜻을 알고 싶어하게 되고 자연히 성경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해야 합니다』하면서 교회가 현대 예술과 너무나 먼 것을 누누이 말씀드려야 했었다.
그것은 사제 측의 미술 교양이 부족함을 말해 주기도 한다. 신학교 생활에 좀 더 예술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작가들의 창작성도 쇄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성예술전을 통해 사제와 예술가 간에 유대한 생기고 좀 더 참신한 교회 예술을 위한 공동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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