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있다. 남편이 오랫동안 병석에서 앓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가망이 없으니 집으로 데려가라는 것이다. 이 부인은 절망을 하고 집에 데려와 궁리 끝에 점장이한테 갔다. 그래서 병이 참말 죽을 병인지 죽는다면 언제 죽을 것인지 물어봤다. 물론 대답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격이다. 이 사람 역시 하느님을 믿는 분이고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리 현실 사회에서도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 전체를 인정하는 행위고, 바라고 사랑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바라는 사람을 때에 따라 배반한다는 것은 결코 그를 옳은 정신으로 믿는다고 할 수 없다.
하물며 하느님을 믿는다는 데 있어서는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한 사람을 배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만일 누가 배반의 행위를 했다고 한다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통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더더욱 성실해야 할 것이고 생명보다 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신을 섬긴다거나 우상을 숭배한다거나 점장이나 기타 마귀를 섬기는 일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보이는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외적 흠숭이다. 마음이 있으면 행동도 고와진다란 말과 같이 누가 만일 하느님을 진심으로 흠숭하고 섬긴다면 외적 행동에도 그를 표시할 것이다.
외적 행동으로 하느님을 흠숭한다는 것은 공적 기도에 참여한다거나 성당에 들어왔을 때 경건히 무릎을 꿇는다거나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거나 하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흠숭한다면서 그 태도에 있어 불경스런 행위나 말 따위는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된 복합체이고 영만을 치중하거나 육만을 치중해서도 안 된다. 영과 육 즉 정신과 행위에 있어 다같이 경건해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누가 만일 부모를 공경한다 하고 태도에 있어 불손하다면 어찌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한다 하겠는가. 또한 누가 하느님을 흠숭한다하고 그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를 한다면 어찌 하느님을 흠숭한다 하겠는가. 인간이 하느님을 흠숭할 땐 인간의 조건을 알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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