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의 약속은 구약성서에서 성취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약성서와 더불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 드디어 나자렛 예수가 등장하고 그 예수 안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메시아적 예언의 성취를 보았다. 그러나 이 성취는 아직 종국적 또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메시아는 왔고 그 여러 국민의 통치는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면 민족 인간 상호간에 그리고 인간자체와 이 우주 안에 세말론적 평화로서의 샬로움(shalom)이 실현되는 셈이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는 평화와 자유, 정의와 생명에 대한 인류의 갈망과 추구라는 지평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는 고별의 사제적 기도에서 공동체의 일치를 청원하며『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 21~23)라고 최후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서 일치라고 표현하는 그 통일은 천상적인 것과의 연대를 말한다. 즉 진리 빛 생명이 천상적인 지배의 한 표지인 것처럼 통일도 마찬가지로 천상적인 지배의 한 표지이며 특징이다. 그러므로 만일에 지상에 통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늘의 투영으로서 즉 계시의 표증과 대상으로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든 영역의 통일이 회복되게끔 된다. 성령의 인도 아래 모든 사람이 같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전인류의 통일을 이룬다는 말이다. 통일의 기초는 오로지 유일한 주님에 대한 단 하나의 신앙에 있음을 에페소서는 4장 5~13절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통일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유보되며『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13, 34)라는 가르침에 충실함으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랑은 인간을 하느님에게 일치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인간을 이 세계에서 하느님의 증인으로 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계획 즉 전 인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로 모으는 통일 계획의 협력자로 되게 한다. 또한 전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도 통일은 필요한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요한17~22)예수의 최대의 소원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화해는 사귐을 교란시키는 어떤 일이 발생하여 두 분파가 서로 대적할 때 그들 사이에서 필요한 것이다.
화해라는 말은 신약성서에서는 바울로 문서에만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일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다『(II고린토5, 19). 『하느님의 원수였던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이제 그분과의 화해를 얻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서 구원되리라는 것은 더욱 더 확실합니다』(로마5, 12). 『이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몸을 희생시키셔서 여러분과 화해하시고』(골로사이1, 22)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던 담을 그분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헐어버리시고 서로 원수가 되었던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에페소2, 14). 따라서 화해는 하느님의 역사이며 인간은 그 대상이다.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께 화해시킬 수 없다. 그는 하느님의 행위에 의해서 그에게 화해되어야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의 말씀을 수탁하고 있다는 그 책임을 통감하여야 하겠다. 더욱이 맡겨진 그 화해의 말씀을 통일을 위해 전해야할 사명은 큰 것이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다』(에페 2, 14).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이 민족의 비극인 38선을 헐어 버리고 남북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실 것이다. 신약성서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한다면 구원이나 은혜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인정할 수 없다. 사람은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계획에 있어서도 구원의 개인적인 면은 공동체적인 면과 구분하기 어렵게 맺어져 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고 한 몸의 지체가 될 때 한국사회의 진화와 우리 민족사가 구원의 역사가 된다. 그러므로 이 땅의 남북통일 문제는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깊이 배려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족성원들이『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사도4, 32)『평화의 줄로 하나가 되게하여』(에페4, 3)『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여야 한다』(I고린토1, 10).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우리 민족의 통일과 아울러 전인류의 일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부활 신앙과 이 땅에서의 일치 통일에의 노력을 분리할 수는 없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 하고 있어라』(루가12, 40)하는 예수의 말씀을 상기할 뿐 아니라 꼭 명심해야 하겠다.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 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하여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예레29, 11). 한국천주교회도 민족통일에 있어서 항상 희망적 미래를 전망한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능력이 복음』(로마1, 16)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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