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와 형철은 제각기 우산을 받았으나 워낙 먼 길을 걸었기 때문에 아랫도리는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흠뻑 젖고 빗물은 운동화 속에까지 들어가 절벅거린다. 형철은 기분이 좋지 않는지 좀전부터 말없이 형일의 뒤를 따라갔다. 입 밖에 내고 불평은 하지 않으나 형철의 심리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형일은 잘 알고 있다.
형일이도 양말까지 젖고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운동화 속이 절벅거리는 것이 좋은 기분은 아니다.
형일은 집에 돌아갈 때에는 아무리 기다려서라도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할 때
『형!』
하고 형철이가 볼멘소리로 불렀다.
『왜?』
앞서가던 형일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집에 갈 땐 버스 타고 가!』
형일은 동생의 시무룩한 표정이 우스워 그만 소리를 내고 웃는다.
『나 지금 기분이 나쁘단 말야』
『응 알고 있어 집에선 우쭐대고 떠났잖아. 그런데 벌써 마음이 변했어?』
하고 형일은 또 웃는다.
『이제 다 왔잖아 집에 갈 땐 버스 타고 가자』
형일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큰댁이 바라보이는 골목에 들어섰다.
그러자 형철은 갑자기 속력을 내어 형일의 앞에 서서 간다. 형철은 큰댁의 돌 층층대를 뛰어 올라가자 대문 앞에서
『할아버지!』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다. 대문에서 안채가 좀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빗소리에 더욱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뒤따라 올라간 형일이가 발돋움을 하면서 부자를 눌렀다. 부웅… 소리와 함께 대청 유리문 소리가 나며
『누구셔요?』
큰어머니의 소리가 났다. 큰어머니가 대문을 열어 주었다.
『어머나! 비 오는데? 웬 일이냐』
큰어머니가 반가와했다.
『큰엄마 안녕하세요』우산을 날쌔게 접고 형철은 얼른 마당 안에 들어섰다.
마당에 들어선 형철은 건너방 쪽으로 걸어가며
『할아버지!』
큰 소리로 불렀다.
『오냐』
하고 할아버지가 미닫이를 열었다.
『응 형철이냐 형일이도?』할아버지가 반가와했다.
『할아버지 잉꼬 갖고 왔어요』
형철이가 우쭐대며 말했다. 아까까지 시무룩하던 때와는 딴판이다.
『잉꼬라니?』
할아버지가 대청에 나서며 말했다.
『할아버지 잉꼬 한 마리뿐이어요』
『그래, 그건 어떻게 알지?』
『엄마가 그랬어요』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형일이가 잉꼬가 들어 있는 상자를 할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큰댁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형일이아 형철은 양말은 물론 바지까지 벗어야 했다. 큰어머니가 내다 주는 큰댁 아이들의 바지를 입었다.
상자의 두껑을 비스듬이 열어본 할아버지는
『정말 잉꼬구나!』
기쁜 소리를 질렀다. 빈틈없이 놓여 있는 새장들에서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새들이 고운 소리로 울기도 하고 푸드득 날기도 한다.
『할아버지, 잉꼬가 우리집에 들어왔어요』하며, 형철은 할아버지옆에 바싹 다가서서 잉꼬에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을 담고 몹시 감탄하는 듯이『그래』『응』형철에 말에 대꾸하며 잉꼬를 엷은 헝겊으로 닦아 준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갖고 간 잉꼬를 한 마리만 남아 있는 잉꼬 새장에 넣어 주었다. 힘없이 보였던 잉꼬가 새장에 들어가자 푸드득 날아 홰에 올라가 앉는다. 남아 있던 잉꼬가 새로 온 잉꼬 옆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참으로 만족스러운 얼굴로 새장 앞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잉꼬는 혼자서는 못 살지요.』하고, 형철이가 아는 체한다.
『그렇지 우리 형철인 모르는 게 없구나!』
할아버지는 또 만족스럽게 웃었다.
큰댁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어느 환갑집에 갔다고 했다. 형일이와 형철은 저녁까지 먹고 큰어머니가 부엌에서 말리어준 바지를 입고 밖에 나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바깥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형일아 이거 받아라 오늘 수고 많았는데』할아버지가 형일이에게 5백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형철이와 나눠 가져라!』
『할아버지 감사합니다』형철이가 절을 했다.
할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우산을 받고 대문 밖에까지 나왔다. 그때 마침 골목 안에서 헤드라이트를 비치며 택시 한 대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 택시 타고 가거라!』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형철은 돌 층층대를 뛰어내려가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택시가 아이들 앞에 섰다. 형철은 할아버지와 큰어머니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익숙한 솜씨로 도어를 열고 먼저 차에 올라갔다. 뒤따라 오르는 형일이에게 할아버지는 2백 원을 더 주었다.
『조심해서 가라!』하는 할아버지의 말과 동시에 택시는 앞으로 나아간다.
형철은 뒷문으로 손을 흔들었다.
형철은 신났다. 올 때에는 버스도 타지 못하고 비를 흠뻑 맞았으나 돌아갈 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택시까지 타게 됐으니 신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형 택시 요금 백50원주면 엄마가 주신 돈까지 6백50원 남아』형철은 머리 속에서 돈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자식!』
형일은 형철에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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