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와 형철은 우연히 집 안에 날아들어온 잉꼬 때문에 비가 내리는 날 고생은 했었으나 그래도 공돈은 생겼던 것이다.
할아버지 댁에 잉꼬를 갖다주고 온 다음날인 오늘은 날씨가 개이고 집에서 바라보이는 시내 이곳 저곳에 서 있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어제보다 파릇파릇한 것 같이 느껴진다.
형일은 어제 할아버지가 준 돈에서 4백 원을 저금통에 넣었다. 물론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다. 비둘기를 살 기금으로 형철이와 의견이 일치되어서 한 일이다.
형일은 크레용을 꺼내 놓고 형철이가 오기를 기다린다. 형철은 도화지와 풀을 사러 시내에 내려간 것이다.
어제 할아버지 댁에 갈 때에 형철이와 약속한 대로 두루미를 함부로 잡지 말자는 포스타를 그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삐익 하는 대문 소리와 함께 숨차게 뛰어온 형철이가 헐떡거리면서 미닫이를 열었다.
『형, 빠르지』
형철은 돌돌 말은 도화지를 내밀며 말했다 .
『빠르긴 뭐가 빨라 보통이지』
형일은 웃으며 말했다.
『형 안 빠르다고…』
형철은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나 민호가 시장에 들러가면 빵 사준다는 것도 안 갔단 말야…』
형일은 말을 듣고 보니 형철이가 빨리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얼른 깨달았다.
『아 그래 잘 했다. 포스타 다 그리고 나서 빵 사줄게』
하고 형일이가 말했다.
『형 정말이지』
형철은 금시 좋아했다.
『그럼』
『형 약속했어』
『응』
형일은 형철이가 사온 도화지를 풀어 놓고 그 한 장에다 우선 도화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만 그려』
형철이의 불평이다. 형철은 도화지를 사러 갈 때에는 자기도 포스타를 그린다는 것 때문에 신이 났던 것인데 형일이가 자기 혼자만 그리면서 형철은 막 무시하고 있는 형일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이다.
『어 형철이도 그릴려고?』
『그럼 나도 그리겠어』
『네가 포스타를 그려 봤어』
『형, 그린 걸 보고 그리겠단 말야』
형일이는 자기 혼자서 그리려고 생각했었는데 형세가 그대로는 안 될 것을 깨달았다.
『좋아 그럼 우선 한 장만 시험 삼아 그려 봐 시험에 합격하면 몇 장을 그려도 좋아』
『형 문제 없어』
형철은 으시대며 도화지 한 장을 펴놓았다. 형일은 연필을 들었으나 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마를 잡고 생각한다.
『형 좋은 생각이 안 떠올라』
『뭐가 그래 총으로 두루미를 쏘는 걸 그리면 되잖아』
형철이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과히 나쁠 것 같지 않다.
『형철이도 쓸모가 있구나』
『그것 봐 내 생각이 어때?』
하고 형철은 자랑스럽게 웃었다.
총으로 두루미를 쏘는 것을 그린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기는 하나 무엇인가 보고 그리지 않고서는 포스타가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형철아 니 총 쏘는 그림 본 것 없어?』
형일은 형의 체면이 안 됐지만 물었다. 형철은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하더니
『있어, 이솝 우화집에 있어』
명랑한 소리로 말하며 자기의 책상 앞에 갔다. 형철은 이솝 우화집을 들고 책장을 넘기다가
『봐 여기 있잖아』
자랑스럽게 형일의 앞에 놓았다.
과연 형철이가 찾아낸 그림은 포스타에 적합한 그림이다. 사냥꾼이 나무에 숨어서 저쪽 나무에 앉아 있는 무슨 새인가 겨누고 있는 그림이다.
『됐어 이거면 문제 없어』
『형, 그럼 두루미는 어떻게 그려』
『목을 길게 그리면 돼』
이리하여 형일이와 형철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일은 형철을 무시했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된 셈이다. 보고 그리는 그림은 어려운 것이 없다.
총으로 두루미를 쏘는 형태가 그려져 간다. 형철이는 코를 훌쩍거리면서 엎드려 그림을 그린다.
도화 연필로 윤곽을 그리고 난 형일은 색깔을 어떻게 칠할까 하고 생각한다. 사냥꾼의 모자는 검정색, 저고리는 밤색, 바지는 곤색, 구두는 검정색으로 칠하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형일은 생각대로 모자에서부터 크레용 칠을 시작한다. 생각하는 것이 어렵지 칠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다. 형일보다 속도가 늦고 또 솜씨도 능숙하지는 못해도 형철이는 제법 칠해 나간다.
그런데 형철은 사냥꾼의 모자를 빨갛게 칠했다. 형일은 깔깔대고 웃는다.
『형 왜?』
하고 형철은 형일을 바라본다. 형철은 어떤 무안을 당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바보 모자가 왜 빨개?』
『왜 등산하는 사람들은 빨간 모자를 쓴단 말야』
형철이는 생각없이 그린 것은 아니다. 엄연히 자기의 눈으로 등산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본 것이다.
『그건 등산하는 사람들이잖아. 빨간 모자를 쓰면 사람들 눈에 잘 뜨인단 말야. 만약에 사고가 나도 쉽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빨간 모자를 쓰지만 사냥꾼은 숨어 다녀야 한단 말야』
형일은 얻어 들은 것을 뽑내며 설명했다. 형일의 설명을 듣고 보니 형철은 과연 그럴 듯하게 생각되었다.
『그럼 빨간 색 위에 검정을 칠하면 되지 뭐』
하고 검정색을 빨간 색 위에 칠하기 시작했다. 형철이가 저고리 색깔을 밤색깔로 칠하기 시작했을 때 형일은 나무를 칠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