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와 형철은 포스타의 그림을 한 장씩 그렸다. 형철은 물론 형일의 그림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으나 그런 대로 잘 그렸다.
썩 잘 그린 그림보다 오히려 재미가 있고 보는 사람의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자, 표어를 뭐라고 쓰지』
형일이가 어른처럼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우뚱 말했다. 형철이도 깊이 생각하는 얼굴을 하다가
『형, 이렇게 하면 돼』
자신있게 말했다.
『어떻게?』
『두루미를 잡지 말자!』
『뭐 두루미를 잡지 말자?』
형일은 약간 비웃는 조로 말했다. 그러자 형철은
『왜 나빠』
하며 다가앉는다.
『글쎄 나쁘진 않지만 좀 평범해』
『그럼 형 지어 봐』
형일이와 형철은 다시 구호를 생각한다. 한참 생각하던 형일이가
『됐어 좋은 것 생각났어』
자랑스럽게 말했다.
『형 뭔데?』
『모든 생명은 다같이 귀하다』
『형 그게 무슨 말야』
형철이가 의아스럽게 말했다.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이 접때 주일에 하신 말씀이야』
그러나 형철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대문 소리가 났다. 밖에 나갔던 어머니와 유미가 마당에 들어섰다. 아이들 방 앞에 운동화가 두 켤레가 있는데 하도 조용한 것이 이상하여
『뭣들 하고 있니?』
하며 어머니는 미닫이를 열었다.
『엄마 포스타를 그리고 구호를 생각하는 거야』
형철이가 으시대며 말했다.
『포스타는 또 무슨 포스타냐?』
『참 엄마는 밤중이야』
형철은 어머니 앞에 나서며 말했다.
『글쎄 밤중도 좋지만…그래 학교에서의 숙제냐』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백학동 두루미를 사람들이 마구 총질해서 잡는다고 접때 아빠가 화를 냈잖아. 그래서 두루미를 함부로 잡지 말자는 포스타를 그리는 거야』
형일이가 그림 두 장을 어머니에게 보이며 말했다.
『어머나 근사하게 그렸구나!』
어머니가 웃으며 칭찬했다.
『그런데 구호가 생각 안 나』
형철의 말이다.
『엄마, 두루미를 잡지 말자는 표어 좋지』
형철은 어머니가 좋다고 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음 그것도 나쁘진 않구나』
『봐 엄마가 좋다고 하잖아』
『엄마 좀 평범하지?』
형일이가 말했다.
『응 그렇긴 하지만… 그럼 좀 고치려무나』
『어떻게?』
『다같이 두루미를 보호하자!』
『응, 엄마 그것 좋아!』
형철이가 신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또 이런 건 어때 에…모든 생명은 다같이 귀하다』
형일은 좀 자신없는 말투로 말했다.
『음, 그건 참 좋긴 해 그런데 그것 하나만 가지고 안 돼』
『그러니까 두 가지 다 쓴단 말야』
『응, 두 가지를 한 장에 쓰면 돼』
『야, 엄마가 최고야!』
어머니와 함께 밖에 서 있는 유미도 한마디 했다.
이렇게 하여 난산을 겪던 표어는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돌아서 안방으로 가려고 했다.
『엄마!』
형일이가 급한 소리로 불렀다.
『왜?』
『엄마 포스타에 이름이 있잖아』
『이름이 뭐야』
어머니가 의아스럽게 말했다.
『있잖아, 눈의 날의 포스타에는 보건사회부, 고속도로 포스타엔 건설부, 이렇게 이름이 있잖아.
『응, 알았다. 포스타를 발행한 곳 말이지』
『응, 엄마 그거야』
『그럼 너희들 이름을 넣으면 되지』
『엄마 그건 좋잖아』
『그럼, 은행나무집 아이들이라구 하면 좋겠구나』
『그래 은행나무집 아이들이 좋아』
형철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모두가 유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형일이와 형철은 빨강 크레용으로 표어를 도화지 양쪽 공간에 내리쓰고 아래쪽 공간에는「은행나무집 아이들」이라고 써 넣었다.
형일은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는 오늘 중으로 포스타를 그려 백학동과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붙이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겨우 한 장씩을 그리고 보니 해는 백학산 위로 기울어지고 있지 않는가.
『형, 오늘은 안 되겠어』
하고 형철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응, 오늘은 안 돼 겨우 두 장밖에 못 그렸잖아』
『형, 좋은 수가 있어』
『뭘』
『밤에 아이들을 데려다 한 장씩 그리기로 해』
형철이가 제안했다. 형일은 그렇게라도 해야 밤 사이에 열 장을 그릴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렇게 하자』
『형 그럼 경수랑 칠성이랑 민호랑 영호랑 내가 오라고 할까』
『응 그래』
형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형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형철이가 뛰어나간 뒤 형일은 얼른 일어서서 들창을 열고
『형철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형철은 언덕 아래로 내려갔는지 위로 올라갔는지 대답이 없다. 형일은 포스타를 그릴 아이들이 크레용만은 가지고 와야 된다는 것이 뒤늦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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