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의 발자국
『진리는 양보가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나 아무리 양상이 바뀌더라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면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확신하는 바를 언제나 어느 때나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박해를 각오하라』는 내용의 예수님 말씀 가운데『당신들은 뱀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순박해야 합니다』(마테오 10ㆍ16ㆍ마르꼬 13ㆍ9~12ㆍ루까 9ㆍ1~6)라는 말이 있다. 막다른 골목일수록 뱀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인격을 원하셨다.
최근의 교회는 신앙인의 양적 확대가 최선의 복음 전파 수단인 양 생각하여 식민지 평정작업과 같은 악랄한 수법에 그리스도를 팔아 넘기더라도 표창장을 수여하던 전세기의 고비를 넘기고도 질적 향상이란 미명 아래 집안 잔치만을 일삼고 있다고 하겠다.
비둘기의 순진성이나 뱀의 지혜가 아니라 달팽이의 여행을 연상케 하는 교회의 역사 같이 여겨진다. 인간이 약삭빠르다면 빠르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인간의 어리석을 만큼 철두철미한 어리석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숭고한 종교적 영역을 형유하는지 모른다.
인간이 치밀한 사회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나면 엉뚱하게도 이상 영역이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형이하학적인 불조리 속에서 고귀한 인격이 시달림을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비둘기의 순진」과「뱀의 지혜」를 조화시켜야만 인간의 활로가 개척될 수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막연하게나마 광명의 길을 틔워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복합개념으로 구성된 인간집단을 교회는 너무나 안역한 웅도와 산술적인 계산으로 다루려고 하지 않았는지? 인간의 완성은 수학으로도 과학으로도 더더구나 게으름을 조장하는 율법주의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유산 관리와 원시적인 감정생활을 애덕의 실천이니 수덕생활이니 하는 아름다운 미명 아래 국세청을 뒤로 미루는 포탈과 주석을 무색케 하는 무질서한 정서의 발산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여기에 진리의 도전이 없을 수 없다. 진리는 인간을 통해 표현된다. 따라서 감정의 대결이나 세대의 정서 차가 아니라 진리의 몸부림이 사람을 통해 용솟음치는 것이다.
■진리의 도전
부조리 한 사회를 논하기 전에 교회가 과연 인간을 어느 정도 포용할 능력이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항간에 희한한 時文이 떠돌고 있다. 교회의 권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즉슨『김 빠진 사람 네멋대로 하는 사람 윤기 바랜 사람 황금에 녹은 사람, 사람이 全혀 없는 곳에다 한숨만 쉬는 사람 체면 없었던 사람에 이래도 저래도 못하는 사람 두통거리가 있나 하면 서산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권좌에 대한 단순한 욕구불만에서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어쩐지 교회의 노쇠화를 말하는 것 같고 교회의 무기력을 대표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인 것이다.
교회가 진리의 동산이라면 진리가 생사의 몸부림을 칠 때 제일 먼저 진리를 잉태했던 교회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천성이기 때문에…
한국의 교회는 사회 정책을 논하기엔 너무 어리고 너무 유치한 것이 아닐는지?
세상의 재력을 한 손에 쥐고 권력을 통해 호령을 하던 서방교회가 잠깐동안 안일한 타성을 지녔다고 해서 과학이란 인간의 잔꾀에 시달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한국의 교회가 입만으로 성서의 진리를 되풀이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삼천리 방방곡곡을 메워줄 리 만무하다.
교회는 눈 먼 장님이 아니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소수집단의 약점을 자각하며 성실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적 열세를 가지고도 하느님의 은총만을 기다리며 낮잠 자는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시련과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설법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삽입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략무기의 개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씨앗을 세상 극변까지 퍼뜨려라』는 지상명령은 각실공히 세상 마칠 때까지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이 교화되고 나면 그 지역의 교회는 마치 천국이 도래한 양 양팔 끼고 눈 감고 자신들의 재력이나 문명으로 지배 령역을 넓혀가며 자기들만이 하느님의 백성인 양 우쭐거린다. 독선은 분열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인격을 파괴하는 독소인 것이다. 복음화의 사명이 세상 완성까지의 불변하는 명령일진대 복음화 전략의 갱신 또한 크리스찬의 지상과제라 할 수 있다.
▲고침…지난호 본란 4단 중간 제목「진리의 도전」제5행『…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는『…를 두고 하는 말 같이 들린다』로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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