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옷에 얼굴과 손은 까마귀처럼 새까맣고 제 키만큼 큰 통을 메고 눈만 반들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년을 보았다.『너 몇 살이냐?』『몰라요』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리곤 종이 조각을 집게에 집어 등에 진 통 속에 기계적으로 주워 넣고는 힐끗 한 번 보고 그냥 거리로 나가버린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나이는 겨우 열 살 아니면 열한 살쯤 돼 보이지만 발육이 늦었는지 키는 일곱 여덟 살짜리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표정한 얼굴 모습에는 무언가 독기가 풍기고 반항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저 아이에게도 부모가 있었겠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이 세상 어디선가 살았을 텐데. 자기 피를 나눈 자식이 저 꼴로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그 부모는 무엇을 생각할까? 그리고 저 넝마주이 소년은 도대체 제 부모를 알기나 하겠는지 또 어떻게 제 부모를 생각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살도록 계명을 주셨다. 그 넷째 계명은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고 사랑할 것과 부모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 필요한 것을 다해 줄 것을 명하셨고 동시에 아랫사람이나 윗사람 서로 할 본분에 대해서 명하셨다. 과연 저 넝마주이 소년은 제 부모에 대한 효도심과 사랑이 있을까? 의심스렇다. 그뿐 아니라 저 넝마주이 소년의 부모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자녀의 영육간 필요한 모든 책임을 다했을까 이것은 더 의심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는 일은 부모가 자녀 생각하기를 마치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여기는 풍조다. 아니면『제 복은 제가 타고 났으니 내가 안 해줘도 살겠지』하고 자녀들에 대해 무관심한 부모들이 있다. 나머지 소수의 부모들만이 자녀에 대해서 인격적인 대우와 관심을 가진다. 자녀를 소유물 취급하는 것도 무관심한 태도도 다 나쁘다. 자녀는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자율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존엄성은 이런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가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남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 자기의 인격과 남의 인격을 동시에 존중해야 된다는 것이 네 번째로 주신 하느님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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