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더불러 고대 영시 중에서 대표적 서정시는「폐허」라 할 수 있겠다.
「위어드」가 이를 파괴했도다!
거대한 흉벽이 자취 없이 사라졌네!
지붕은 허물어지고 탑은 망가졌도다.
서리 덮인 요새는 허물어졌고
체신하던 흉벽 찾을 길 없네
무정한 세월이 모두 휩써갔네.
-「폐허」1~6-
이「폐허」의 첫째 줄과 24행째 나타난「위어드」는 천지를 관장하는 <신>으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영시에 나타나는 똑같은 <위어드>라는 어휘의 외연과 내포가 때에 따라 상이한 점을 알 수 있다. 즉 상반되는 이교적 <위어드>와 기독교의 <신>의 뜻으로 동일한<위어드>란 낱말이 사용되고 있다.
「나그네」「폐허」와 동일하게 극적 독백 형식으로 된「뱃사공」은 노뱃사공의 독백이며 격랑이는 바다의 생활의 고경을 말하면서도 바다의 걷잡을 수 없는 매력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영국 국민의 통성인「안이하게 있을 수 없는 성질, 싸우고 추구하고 발견하며 굴복하지 않는 성격」을 이 시에서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 온갖 바다의 위험도 어려움도 숙명에 맡기고 모험을 감행하며 생활과 고민하는 뱃사공의 서정을 그린 이 시의 전반부(1~64)와 모든 것을 신에 의탁하는 경건한 노뱃사공의 신앙을 표현한 후반부를 석학 C. T. 어니언은 동일한 시인의 작품이라 했다. 그러나 브라운대학의 고대 영문학 연구 권위인 G. K. 앤더슨 교수는 이 시의 전반과 후반은 비록 논리적으로 연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밀접한 관계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가 공편자로 되어 있는 영문학 선집에 그 전반부만을 현대 영어로 번역해 게재하고 그 해명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나머지 60행은 신앙이 두텁고 어조가 교육적이지만 이 전반부와는 명백한 관련이 없으며 이 시를 필사한 성직자에 의해 첨가되어졌을 것이다.』안온한 육지, 환락의 도시에 생활하는 나태한 인간들은 이 뱃사공의 안중에 없다. 보호해 주는 이 없는 광막한 바다, 눈보라 치고 얼음 깔린 냉랭한 북해에서 고민하는 이 노뱃사공의 친야에는 생사를 초월한 유구한 천지가 있고 굳은 감민의 그 혈관에 맥맥히 흐르고 있을 뿐이다.
아무 야심도 목적도 없다. 다만 무한을 동경하는 본능의 욕구는 험악한 파도와 대결할 것을 촉구한다. 물결이여 이 몸에 부딪치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 이 몸을 실어가라. 음락도 금은보화를 받는 영광도 여인의 사랑도 그밖의 여하한 이 세상의 환락도 영원히 흐르고 있는 파도 이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도다. 일정한 지역에 안주하는 것은 그에게 질식을 뜻한다. 꽃피는 계절이 찾아와 번화한 거리 목장의 생기가 재생의 호흡을 회복할 때 그의 마음은 유한의 세계에서 무한한 바다의 세계로 떠나고자 마음이 조바심친다. 숲 속에서 처량하게 우는 뻐꾹새도 제한된 자기 신세를 슬퍼하고 있지 않는가? 고래가 뛰놀고 갈매기 우는 바다로 가자.
고대 영시「뱃사공」은 바다를 자기 세계로 하여 바다와 숙명적으로 맺어진 영국 국민, 바다를 자기네 나라인 양 바다의 품에 안겨 자라고 바다의 혜택을 무한히 누려온 영국 국민들의 정서를 즐겨 읊어 온 역대 시인들의 선구가 된 시라 할 수 있다. 분명히 이교시인이 시의 후반부는 이교 전통과는 정반대되는 기독교적 신앙 고백에 주목해야겠다. 고대 영시에서 <위어드>가 <신>의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지만 현대인의 어휘에서 사라진 <위어드>를 <앵글로 색슨>시대(600~1066)의 독특한「숙명관」으로 해석하는 견해에 대해 G. K. 앤더슨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신>과 <위어드>는 함께 혹은 대립해서 세계를 지배한다. 체념에 대한 강조와 좋은 내세에서의 구원의 희망을 내세우는 기독교 윤리는 본질적으로 이교적인 자아신뢰적 영수주의와 공존하고 있다.
포용력이 무한히 넓고 동화력이 강한 <앵글로색슨>족들은 역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위어드>를 <신>에 융합시키는 데 조금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외세의 침범에 시달려야 했고 험악한 기후의 악조건하에서 고달픈 생활을 당위해야만 했다. 이런 생활을 지탱하는 마음의 지주로서 그들은 기독교에 아주 자연스럽게 귀의하게 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생활이 밀착되어 있었다는 점을 그 시는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