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기
우선 지난 10년 간만 거슬러 올라가 본다. 국가 사회는 경제 성장과 고소득에 혈안이 되어 왔지만 그 어떤 불미스러운 요인 때문에 바라는 만큼의 발전은 이룩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편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그 내용을 주교단에 두고 볼 때 문서 행정의 질서 확립에만 신경을 쏟고 최근에 와서야 사회 정의와 평화의 구현을 위한 의제가 주교회의에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제를 다루는 방법은『○○ 주교를 전문위원으로 추대하고…』
또 다음 회의에서는『○○ 주교를 추대하여 정의 평화 구현 작업을 보강하고…』등등의 김 빠진 내력뿐이다. 그래도 체면 유지가 가능했다면 작년 성탄절의 金 추기경 메시지와『불조리를 극복하자』는 주교단 공동교서가 곧 그것이다. 그러나 강론이나 교서는 실제에 있어서 추진력 자체는 아니다.
국가 사회의 시책과 그 진척 과정을 분석판단하고 거기에 나타난 허실을 밝혀내고 원인 치료를 적극 시도해야 할 텐데 그런 면에서의 조직적인 대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 교회는 주교단이 전부가 아니요 성직자군이 전부도 아니요 전 주교와 전 성직자와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상을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모든 계층의 멤버들이 유기적으로 동원될 수 있는 일사불란한 조직의 활용이 필요하다. 아쉽다고 한다면 주교단의 의제는 주교단 안에서의 토론으로 충분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한국 주교들의 안일주의가 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 외면한 교회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에서는 왕의 명령이 문구대로 추진력이요 사상의 충분한 표현이 되었었다. 그러나 현대인의 정신 구조는 자신이 참여의식을 느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에너지를 투입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의 편승한 인간의 의식구조의 변화에는 신자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주교단에서는 정의 평화 구현을 위한 교서를 냈다면 반드시 신자들의 참여도와 의식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하고 새로운 직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도 따분한 느낌이다.
두 번 세 번 회의를 열어서 한다는 것이 고작해야 주교들을 위한 세미나란 인식밖에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주교들은 아직도 명령만으로 사회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 믿고 있는가? 명령의 힘은 민주적인 참여도가 보장되어야 나타난다. 교회의 일원으로서 신앙의 보람을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교서를 부연할 수 있는 교재가 계속 나와야 하겠고 주교회의의 전 내용이 신자들에게 주입되고 난 다음에야 회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너무나도 실망을 안겨 주고 있다. 평신도들 모임에서 교회 당국의 현황을 참고로 이야기하려고 했을 때『그것은 그 택의 사정이고 우리 사정은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엄격하게 구별하자』는 말을 들었다.
물론 한 가지 예로 모든 상태를 대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한 예에서 교회의 지체들이 뿔뿔이 제맘대로 놀고 있다는 현실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서는 한낱 헛소리요 휴지 조각밖에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요구되는 봉사자상
교회는 인류 구원을 위한 봉사자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교회는 봉사자요 사회의 모든 봉사는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교회는 봉사자들의 훈련장이요 교회의 조직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봉사정신으로 엮어진 단체라야 한다. 교황의 서명이「종들의 종」으로 되어 있는 것만 봐도 교회의 이미지는 쉽게 파악된다. 평화와 정의는 지배와 권력 행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에서 나온다. 주교단의 공동교서가『부조리를 극복하자』는 것이었고 오늘날의 부조리는 권력의 남용과 위선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교육과 통솔의 모든 원리를 권위와 권력에서만 찾으려는 주교들의 태도는 그 자체에서부터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지체가 마비된 교회에 대한 책임과 교회와 사회를 철두철미 이원화시키고 있는 신자들의 자세에 대한 책임을 일차적으로 주교들이 져야 할 것이다. 개성과 능력 개발을 도외시한 권위 조직의 위력만 믿고 태평성대를 구가있는 한 정의나 평화를 위한 노력은 입술놀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회 참여 이전에 교회의 전성원들로 하여금 정의와 평화의 대열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틔워 주는 아량이 아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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