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는 분단된 민족으로서 양단된 반도에 살고 있다.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논하게 되는 것 자체도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일을 「어떻게」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통일을 필요로 하는 분단이「왜」생겼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분단의 결정에 있어서 미소 양대국인들이 그렇게 결정했고, 그 결과에 있어서 약소국인들이 분단 상태를 쉽게 기정사실화 한 그「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이제는 민족통일을 의미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목(司牧)을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서 나오는 인간 구원의 봉사활동이라고 한다면, 사목신학은 교회의 이 활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는 이 활동의 목표나 방법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와서 보다 인간다운 사회건설을 너무나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일부 해방신학자들을 염려해서 교황청은 경고한 일이 있다. 『인간이 인간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도록 하는 근본적 원인, 즉「죄」는 사회의「구조」안에 있기 전에 인간의「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물론 이것이 「구조는 좋은데 마음이 나쁘다」는 단순한 논리는 아니다.
인간이 동시에 변하지 않는다면 사회구조적이 변혁만으로 인간을「위한」사회건설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통일 사목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민족분단은 정치경제, 사회, 문화적 구조뿐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인간-자신, 인간-이웃, 인간-하느님간의「분열」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민족적 분열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인간을 위한 사회건설을 포함)에 장애물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 자녀들의 발전(인간의 복지 포함)에 지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으로부터의 참된「해방」이 요청되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의 분단과 그 분단 상태의 연장은 그 결과가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요인, 남북한 상호간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립, 정치적 영향과 관련되지만 마치 구조적「필연성」에 의하여「운명」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볼 수는 없다.
사실은 분단을 결정「한」것도, 통일을 결정「할」것도「인간」이다. 물론 구체적인 여건 하에서 그렇다.
만일 민족분단이 인간의 「분열」을 의미한다면 민족통일은「일치」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화해」를 전제로 한다. 이것은 민족화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화해란 남북한의 화해 이전에 민족적 타원에서의「인간-이웃」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자신의 변화와 사회조의 변혁,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만이 통일을 이룩하지는 못한다. 무슨 뜻인가? 양적(量的)으로 무엇이 더 필요하다기 보다는, 여타의 조건들이 제대로 그 역량(力量)을 발휘하도록 하는 요소로서「인간 자신의 변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 안에 이미「분열」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는 인간의「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자신」의 분열은「인간-하느님」의 분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인간-이웃」의 분열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민족분단에도 이미 크게 영향을 끼칠「인간-이웃」관계라는 의미에서 주요시된다. 인간-자신의 분열을 지닌 채 그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한, 일치 또는 통일을 지향하기 보다는 분단 또는 분열을 초래하기 쉬울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인간-자신」의 관계가 분열되어있는 한, 「인간-이웃」관계도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이웃을 위하여」결정하기보다는「남을 반대하여」결정하기가 쉽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인간-자신」의 일치는 「인간-이웃」의 화해, 즉 민족화해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일치나 화해의 원동력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인간-자신의 일치를 이루는 이 사랑은 인간-이웃간의 화해를 이루는 사랑 없이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족화해란 인간간의 공동체며 동시에 하느님과의 공동체며 동시에 하느님과의 공동체를 연상케 하고, 분단과 분열로 얼룩진 이 한반도에서도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것을, 그리고「우리는 형제자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생각이다. 한편으로는「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나 중심이 되지 못했었으며 아직도 그렇다.
이렇게 그 존엄성과 존엄한 권리의 인정을 받지 못하던 인간은 어떤 특정인들만도 아니고, 남한이나 북한의 주민만도 아니다. 한반도의 민족전체이다.
다른 편으로는 자신만을 생각하고 위하는 일부특권층에 속한 이들은 결과적으로 동족을「타인」(남한이나 북한내)또는「이방인」(남북한 상호간에)으로서 대하게 되었으며 분단 상태를 이들에 대한 지배권력 구축의 기회로 만드는 결과까지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분열된 인간-자신」관계의 논리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분열된 인간-이웃」관계인 것이다.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민족적 차원에서의 인간-이웃「화해의 행위」가 불가결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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