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임재(臨在)와 묵은 생활에서 마음을 돌려 새 생활로 돌아설 것과 옛 제도와 새질서의 차이점을 누누이 설교하신 예수께서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본론으로 하여 해로운 세상을 제시하시려고 한다. 이 교설을 온 세계에 펴기 위하여 「열둘」을 뽑아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시고 하느님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셨다. 12사도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느님나라에 대한 교육을 받을 것이며 언제나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 고락을 같이하고 고통을 겪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시다가 중턱 평평한 곳에 멈추었다. 산 밑에는 온 세상 각처에서 몰려온 많은 군중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혹은 예수님에게 치유를 받으려고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사가들이 만일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군중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들은 실로 사해동포들이었다. 그들은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서 예수를 찾아온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열두 제자 외에 다른 제자들(아마도 72제자들)을 위시하여 북쪽에서는 이방인의 도시 데카폴리스에서 왔고, 남쪽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지방에서 왔고, 예수께서 탄생했을 때 무고한 어린이들을 대량 학살한 폭군 헤로데 대왕의 출신지 이루메아에서, 심지어는 외국땅 페니키아인들의 도시 띠로와 시돈에서까지 왔고 예수의 명성은 저 멀리 그리스인들의 영토 시리아까지 펴져 있었다.
데카폴리스는 열개의 도시 연명체라는 말로서 요르단 건너편이라고 성서에서 말하는곳, 즉 유대인들이 사는 땅에서 요르단강을 건너서 있는 지방이다. 이 지방은 알렉산델 대왕(전365~323)때부터 그리스인들의 식민지로서 생활종교 등 여러 부문에서 속속들이 헬레니즘문화에 젖어 있었다. 따라서 유대아인들에게는 이교도들이였다. 이 지방을 10개 도시 연맹체로 만든 것은 로마의 대장군 폼페이우스가 조직한 것으로(전64~63)예수 당시에는 일부 도시가 헤로데 대왕에게 인계되어 있었다.
이두메아는 구약성서에서 에돔이라고 불리는 지방으로 70인역 성서에서 에돔대신 이루메아라고 썼다. 에돔은 태고에 이사악의 큰 아들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야곱의 쌍동이형 에사오의 별칭으로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고 하느님의 선민 축에 끼지 못하고 방황하던 민족으로 그 후손을 에돔인들이라고 부르며 유대아인들과는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띠로와 시돈은 페니키아(현 시리아)의 도시로서 예수당시에는 로마인들의 식민지였으나 그 당시에 이미 2천년의 역사를 가졌던 태고의 도시였고 상공업이 발달하여 예수당시에는 세속적인 도시였다. 예수께서 이곳에 들러 복음을 전한 일이 있었고 남다른 보살핌을 받고도 불신하는 가파르나움보다는 띠로와 시돈이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한 지방이다.
예루살렘을 위시한 유다지방, 북쪽의 데카폴리스, 띠로, 시돈에서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들었으니 온 세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예수님, 사도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한 자리 모인 곳, 이것은 교회의 모습이다. 이제 이 대군중을 앞에 놓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교회를 개설하면서 개회식사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산에서 내려오시며 당신을 만나려고 사방 각지에서 모여든 군중을 보신 예수께서는 곡식이 파릇파릇 자라나는 농장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약간은 흥분된 기쁨과 앞으로의 수고를 생각하며 야무진 계획을 세우는 농부는 정녕 행복에 넘쳐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창한 지도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 무릎을 맞대고 담소하는 사랑방아저씨처럼 그들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비로소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 가까이에는 12제자들이 앉았고 그 뒷줄에는 72의 제자, 그리고 저 멀리 내리받이에는 군중이 에워싸 있다.
예수의 이 산성설교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와 신법을 전하며 12지파 이스라엘민족에게 각각 축복과 그들 원수들에게 내리는 저주의 신탁을 전하는 광경을 방불케 한다. 예수께서는 이제 새 하느님 백성에게 내리는 새로운 법과 새로운 축복을 내리고 새로운 생활윤리를 제시하실 것이다. 그러나 아집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질식으로 몰아넣는 위선자들은 불행하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요는 사랑과 성실, 이것이 율법대신 하느님 나라의 새 법의 강령이 될 것이다.
대강 이러한 내용의 말씀에 뒤따라 실제로 구원의 행적이 이어진다. 병 걸린 사람은 고쳐주고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은 악귀를 쫓아내주고 마음이 아픈 사람은 쓰다듬어 주실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이 이 세상에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산상교훈을 마치시자 예수께서는 군중에게 떠밀리다 시피 산을 내려오셔서 제자들에게 배를 한척 준비하라고 이르셨다. 갈릴래아 바다를 건너가시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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