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아버지는 폐결핵으로 병들어 눕고 무정한 어머니는 집을 나가 버린 불행한 가정에서 어린 동생을 거느린 어린 소녀가 가난과 실의에 겹쳐 있는 것을 담임선생의 노력으로 사회 온정을 받게 된 밝은 이야기가 있다.
부산진구 대연동 대연국민학교 3학년 9반 김애란(젬마 12ㆍ가명) 양과 신은례(21) 선생이 그 주인공.
김 양의 가정은 아버지 김경태(아우구스띠노 46) 씨가 단신 월남 6ㆍ25 당시 전투경찰에 몸을 담고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 중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져 허리에 중상을 입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2년 8개월 만에 경찰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김 씨는 생활욕이 강해 그런 대로 자립생활을 해오던 중 60년 10월 19일 괴정동에서 알게 된 고옥자(바울라) 여인과 결혼, 애란 양과 신덕(예로니모 대연국민학교 2년) 군을 낳아 살아오다가 8년 전 부인 고 여인이 남편의 병 간호와 가난을 면키 위해 돈벌이에 나섰으나 지금은 소식도 없다는 것이다. 그 후 김 씨는 채소 장수 양계, 완구와 성구(聖具)를 만들어 팔아가며 어떻게 하든 두 남매를 훌륭히 키워 보겠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3개월 전 유일한 생활 수단으로 부산공전 부근에 판잣집을 짓고 설탕물을 녹여 비행기와 과자를 만들어 팔아 연명하던 것이 판잣집 철거 대상에 걸려 지금 살고 있는 대연2동 5통 1반 남광아파트 뒷산 성당(대연동) 터에 움막을 지어 들었다. 그 후부터 갑자기 몸이 악화 폐결핵으로 옮아 이젠 꼼짝할 수 없이 고스란히 굶어야 했다.
처음엔 동사무소나 교회 그리고 이웃의 도움이 있었으나 그것마저 떨어져 이젠 어쩔 수 없이 어린 애란 양이 보다 못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쑥을 캐고 구걸하다시피하여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먹여야만 하는 가장 아닌 가장(家長) 노릇을 해왔다. 이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김 양은 자기 반에서 1ㆍ2등을 다투는 착한 어린이로 통한다.
이런 딱한 사연을 전혀 모르고 있던 담임선생은 김 양이 몸이 쇠약해지고 며칠씩 결석을 하는 것을 보고 가정방문 끝에 사실을 발견 그 후부터 신 선생은 자기 도시락을 주기도 하고 급우들에게 서로 돕게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도와야 할 김 양의 가정 형편에 신 선생의 힘으론 너무도 부족했다. 이 사실을 여러 선배 교사들과 집안 식구에게도 의논하고 협조를 구했다.
결국 이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지금은 여러 군데서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 학교로 찾아간 기자가 김 양을 찾아『빵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하니 김 양은 끝내 거절『그럼 집에 가져 가서 같이 먹겠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고이는 김 양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아저씨 아버지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소원입니다』이 솔직한 어린 소녀의 애원에 굳어진 세정이 안타깝기만 했다.『가난한 학생이 더 많이 있겠지만 김 양의 처지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는 신 선생은『교회가 서로 돕는 협동심이 좀 아쉬워 보인다』고 말하면서『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할 줄 아는 교회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겠는가』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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