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와 형철이 그리고 경수와 민호는 형일이네 큰댁에 들러 형일의 할아버지에게서 칭찬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일이의 아버지도 무척 기뻐했다.
근래에 드물게 보는 좋은 일을 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아이들은 흐뭇하기만 했다.
영호는 포스타를 함께 그리기는 했으나 신문 배달 때문에 백학동으로 함께 가지 못한 것을 몹시 안타까와했다.
형일이네가 포스타를 붙이고 돌아온 다음 날 밤 백학동 산마을 동장 집에는 마을 어른들이 대여섯 명이 모였다.
어른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방 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동장이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면서『바쁘신데 오늘 이렇게 모이게 해서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하고 말을 시작했다.『오늘 모임의 뜻을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동장은 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말을 계속했다.『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우리 고장의 일에 대해 너무나 등한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며칠 전부터 두루미를 보호하자는 은행나무집 아이들의 이름으로 된 포스타를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이들의 포스타를 붙이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가책을 느꼈습니다. 두루미를 마구 총질한다는 사실이 얼마 전에 신문에 보도되었을 때도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가졌으나 구체적인 안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포스타를 붙인 것은 우리들과 같은 어른들도 아니고 또 우리 마을 어린이들도 아닙니다. 포스타를 붙인 어린이들은 시내의 어린이들입니다』하고 말했을 때『아 그렇구만 난 우리 마을 아이들이 붙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시내의 아이들이 붙인 겁니까』시내의 운송회사에 다니는 용팔의 형은 자못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네 그렇습니다.』동장이 대답했다.『말씀 중에 자꾸만 말해서 미안합니다만 나도 그 포스타를 보고 동장 말씀과 같이 사실 가책을 느꼈습니다. 어서 말씀을 계속 하십시오』하고 용팔의 형은 말을 끝냈다. 『두루미는 우리 고장의 명물입니다. 철이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그 할아버지가 내일처럼 두루미를 지켜주었는데 돌아가신 후에는 내일처럼 우리 모두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내에서 오는 사람들이 총질을 함부로 해도 보고만 왔습니다. 두루미는 우리 고장의 명물이기도 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조류가 아닌 두루미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부터라도 두루미를 보호하는 데 온 마을이 한 마음 한 뜻이 돼가지고 힘써 주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렇게 오십사한 것입니다』하고 동장은 말을 끝냈다.『나도 며칠 전부터 마을에 나붙은 아이들의 솜씨로 보이는 포스타를 보고 참 어른들보다 낫구나 하고 두루미의 보호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가지던 차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젊었을 때 군청에 다녔고 지금은 마을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경석의 아버지가 말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임은 퍽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두루미를 철저하게 보호하자고 했다.
백학동 산마을에는 꼭 삼십 집이 모여 살고 있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한 집이 하루씩 두루미가 있는 뒷산을 지키자고 했다.
어른들이 일 때문에 산으로 올라가지 못할 때에는 가족 중에서 누가 대신하고 또 그렇지 못할 때에는 아이들이 대신 지키자고 했다.
이것은 동장의 의견이었다.『동장님의 의견은 퍽 좋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실행하기도 합시다. 그리고 또 이런 것은 어떻겠습니까』하고 경석의 아버지가 말했다.
경석의 아버지의 말은 마을 입구에 큰 간판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고속도로주변에 세워져 있는 상품의 광고판 같이 언제나 세워둘 수 있는 큰 경고만을 세우자는 것이었다.『그것도 마을을 위하고 두루미의 생명을 아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비는 제가 혼자서 부담하겠습니다』하고 경석의 아버지는 말을 끝냈다.『그것참 좋은 생각이오』『그야 그런 걸 세워 주면 오직 좋겠습니다』『암 좋구 말구』모두가 대찬성이다.『결국 마을을 위한 일인데 경석의 아버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할 것이 아니라 모두 얼마가 들지는 몰라도 나도 경비의 절반을 부담하겠습니다』동장이 웃으며 말했다. 모인 사람들은 동장의 의견을 박수로 환영했다. 이리하여 백학동 산마을의 두루미 보호운동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밝은 앞날을 예상하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가 흐뭇한 마음으로 밤이 늦기 전에 헤어졌다. 조그마한 개천에 걸린 나무다리를 넘어선 경선의 아버지는『저쯤에다 경고판을 세우면 좋지 않겠소. 뒤에 나무도 울창한데 미관상으로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거요』나직한 언덕을 가리지켜 말했다.『그럼요. 간판점에 부탁해서 그림까지 잘 그려 세우면 미관상으로도 참 좋구 말구요』함께 돌아가는 용팔의 형이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처럼 기뻤다. 결국 백학동 산마을의 두루미 보호운동은 형일의 포스타에 대한 아이디어와 형철이 경수 민호 영호의 협력에 의해 시작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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