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흐름이 날로 새로와짐에 따라 한국 역사의 앞날을 내다보고 우리 한반도의 평화건을 인식하는 일은 퍽 시의적절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닉슨 미국 대통령의 소련 방문을 계기로 세계의 긴장 완화와 범세계적 안전 그리고 국제 협력의 강화를 촉진시키려는 의도 아래 미소 정상회담은 그 수확의 하나로 평화 선언을 채택한 줄 안다. 평화 선언은 직후 상태의 증언을 명시한 것으로 우리에게 일단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후시대의 종막」(新東亞)을 토론하는 좌담회에서 김상준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가 무엇보다도 양국이 상호 세력 균형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서로를 받아들였다는 점과 상호간의 국경선 문제에 있어서 현상동축 다음에 평화 공존 그리고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한 점을 지적하면서 평화 공존 12개 원칙 자체가 지금까지의 냉전체제를 공식적으로 동결하고 대결의 시대로부터 협상의 시대로 입문한 첫 걸음으로 앞으로의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손신석 교수도 전후 냉전시대에 종지부를 찍자는 의도에서 미소가 세계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대결을 피하고 이데올로기와 사회 체제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공존해야 한다는 시사를 던진 회담이기에 이러한 공존을 바탕으로 해서 두 나라 사이의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세계의 장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평화선언이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의 불가침조약과 비숫한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동남아 정세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박준규 교수는 평화 선언의 한국적 의미」(創造)에서 시도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 기류와 한반도의 정세는 그러나 아직 난관도 비관도 불허하는 차가운 함수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은 이영희 교수의 지적과 같이「동남아시아 문제」(北韓)는 서구의 정세처럼 안정과 고정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제부터 전면적인 변화와 재구성의 국면이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미ㆍ소 평화 공존의 성숙과 이에 앞선 미ㆍ중공 간의 대화 조성 무드는 확실히 세계 3극 구조의 상호 승인을 의미하고 있으며,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어떤 계기를 손짓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國土」(한국일보 6ㆍ25)라는 시에서 조태일 시인이 호소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물과 물은 소리 없이 만나서/흔적 없이 섞인다./차가운 대로 흑을 뜨거운 대로 섞인다. 바람과 바람도 소리 없이 만나서/흔적 없이 섞인다/세찬대로 혹은 보드라운 대로 섞인다.
빛과 빛도 또한 소리 없이 만나서 흔적 없이 섞인다. 쏜살 같이 혹은 느릿느릿 섞인다.
한 핏줄끼리는 그렇게 만나고 섞이는데 한 핏줄의 땅을 딛고서도 사람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사람이면서 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젊은 시인의 이토록 안타까운 절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성을 잠재울 수가 없다. 신상초 씨의 닉슨과 브레즈네프의 대좌」(月刊中央)에 의하면 명백하다. 남북한도 언젠가 평화 공존을 하게 될 것이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선행조건이 있다. 한국의 종합적인 국력이 북괴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평화 요건의 충족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평화 공존을 받아들일 단 하나의 방법은 실력 양성뿐이라고 신 씨는 못 박고 있다. 물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민족 통일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통일은 우리만이 해결할 문제임을 재환기한 이홍구 교수의「70년대의 의의와 통일의 정치」(世代)에서 민족의 역사적인 과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주변의 정세 변화나 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기보다는 본질적이고도 일반적인 변화의 성격에 민감해야 하며 우리의 시련이나 인간적인 위기도 궁극적으로 정치의 무대에서 극복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고 보면 더한층 총명한 정치문화에의 갈망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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