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참흥 시비
작년 한국 가톨릭 주교단이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교회의 사회 참여」를 결의한 후 교회 안팎에서 수차의 「심포지움」과 좌담회 등을 통하여 종교의 사회 참여에 대한 찬반 시비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또 한 해의 상반기를 보내면서 돌이켜볼 때, 당 부당론은 교회 밖의 어떤 「심포지움」에서『정치와 경제가 팽배한 사회에선 종교는 외적 상황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한 부적론이 증명됨으로써 무색해진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사회 정의의 구현이란 정치적 명제이지만 종교가 이를 새삼스럽게 표방하고 나설 땐 정치가 사회 정의를 제대로 구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종교의 참여는 어차피「정치 참여」의 성격을 띠게 된다.
■정치적 간섭이냐?
참여에 대한 부당 내지 부적을 주장하는 태도가 상당히 지지되고 있는 것도 결국 종교의 사회 참여는 정치 간섭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며 그것은 종교가 정치적 다수파였건 소수파였건 종단엔 종교와 정치를 둘 다 타락시켜 온 사실이 부정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당론은 곧 내실론이기도 하다. 종교의 좌표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방관론은 아니며 어쩌면 보다 절실하고 근본적인 용법인지도 모른다.
참여의 당위를 주장하는 태도는「방관은 불선」이라는 실존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종교가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개인의 정의가 아니라 사회 정의이고, 따라서 그가 방관할 수 없는 것도 개인적 불의가 아니라 사회 불의이며 그것의 책임 소재란 항상 모호하여 특정인에게 귀속될 수 없는 데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부정과 정실사회
가령 한국의 경우 사회 불의인 부정부패가 쉽게 제거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전통적인 정실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자의의이 극히 희박하여 혈연이나 지연 등에 기인한 파벌의식이 의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이 집단적인 편견은 그 나름의 윤리에 의하여 자기를 합리화시킨다. 가령 정치인은 정치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정당인이며 그, 이전에 한 사람의「동향인」이다. 그가 특정한 정당이나 지연윤리(義理)에 위배될 때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인도 편견이라는「불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정책은 정략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라도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당원의 개인적 양심, 종교적 양심과는 항상 거리가 있는 법이다.
■종교와 정치
그런데 얼마 전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사회 정의는 더욱 일방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종교적 안목으로 볼 때 국가 지향하는 사회 정의는『미래의 복지를 쟁취하기 위해선 현실은 다소 유린되어도 좋다』는 이상론으로 비칠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방관은 불선」이란 종교적 태도는「정월 초하룻날 잘 먹기 위해서 섣달 그믐날을 굶을 수 없다」는 현실론일 것이다.
종교가 예의 국가적 사회 정의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종교가 국가 존재의 필연성을 긍정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종교는 과연 국가를 긍정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종교와 정치의 상호 견제와 균형은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종교와 정치의 상호 견제와 균형은 종교가 정치에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을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상태인가? 종교가 정치에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생각될 때 그것이 곧 깊은 부식일 수 있으며 「이 정도에도 멈추자」고 그 추세를 걷잡을 수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이것은 얼핏 하나의 원칙론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다음과 같은 이반 까라마조프의 말을 긍정한다면 위의 원칙론은 공허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교회야말로 스스로 그 속에 국가 전체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며 국가 속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야 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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