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동 산마을 동장집에서 두루미의 보호를 위한 모임이 있은 다음날 동장 아저씨와 경식이 아버지는 시내의 간판점에 경식판을 주문했다.
경고판이라고 해도 관공서의 경고판처럼 위압적인 것은 아니었다. 형일이네 포스타의 표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
그림은 간판점에서 알아서 잘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포스타이기는 하나 더 좋은 표어는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경고판은 이삼 일이면 완성된다고 했다. 동장과 경석의 아버지는 이 경고판으로 인해서 백학동 산마을 여러 가지의 일들이 앞으로 잘 되어나갈 것 같은 부픈 희망을 갖게 되었다. 동장과 경석의 아버지는 완성되는 대로 곧 마을까지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고 간판점을 나섰다. 경고판은 예상보다 값이 쌌다. 두 사람은 두루미의 보호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를 저마다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형일이 영호 경수는 모두가 같은 성일중학교에 배정이 됐다. 성일중학교는 형일이네 동네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다.
역사가 오래 된 학교이며 그보다도 엎드리면 코가 닿을 곳이 되어 부모들이나 아이들은 좋았다.
그날 누구보다 기뻤던 아이는 영호였다. 한때 고민을 했던 등록금도 해결된 지 오래며 또 중학교의 배정이 끝났으니 이제는 중학생이 다 된거나 다름없었다.
영호는 어머니가 있는 시장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시장 입구의 길가에서 과일 상자를 앞에 하고 다른 아주머니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엄마 나 성일중학교에 배정됐어』영호는 어머니의 앞에 채 가기도 전에 어머니가 자기를 본 것 같아서 소리쳤다.『엄마 나 성일중학교에 배정됐어』영호는 어머니 앞에서 다시 같은 말을 했다.『성일중학에!』어머니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애써 눈물을 참았다.『응!』『잘 됐구나!』
어머니는 기뻤다. 영호의 아버지가 앓기 시작해서부터 그리고 영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오늘까지의 고생이 이제 끝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영호의 중학교 배정이 영호의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 주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아마 더할지도 모른다. 영호는 어머니의 고생을 덜기 위해 중학교에 올라가면 아침에도 신문 배달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영호의 어머니는 그와 같은 느낌을 그 순간 느꼈던 것이다.『영호야 어서 집에 가서 밥 먹어라. 그리구 지국으로 가거라!』어머니가 상냥하게 말했다.『엄마 나 밥 안 먹어도 돼』하고 영호도 웃으며 말했다.『왜 안 먹니 어서 먹구 가거라』『싫어』『그럼 저기 가서 라면이나 먹어라』하며 어머니는 턱으로 길 건너의 음식점을 가리켰다. 영호는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과일 상자를 부탁하고 일어섰다. 음식점은 판잣집 같은 조그마한 가게였다. 가게에서는 만두도 팔고 우동이며 라면도 팔았다.『엄마 나 만두 먹겠어』영호는 솥에서 꺼내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만두에 눈이 가자. 그것이 먹고 싶었다.
『그러려므나 아저씨 만두 열 개만 주세요』
하고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에게 말했다.
『네』
주인 아저씨는 접시에 만두를 가져왔다.
『싫다니까 그래』
그러나 어머니는 영호의 권에 이기지 못해 하나를 집었다. 영호네 모자가 이렇게 시장 안의 싸구려 음식점이나마 밖에서 함께 앉아 음식을 먹은일은 이 몇 해 없었던 일이다. 어머니는 오늘 영호가 참으로 대견스럽게만 생각된다. 달걀보다도 작은 만두이기는 하나 영호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웠다.
어머니는 영호가 그같이 잘 먹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다. 언제나 남들처럼 잘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호야, 일찌감치 오너라. 엄마도 일찍 갈게』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왜?』
『너, 배달이 끝나면, 곧 집에 올 거 아니니?』
『응』
어머니가 영호를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한 것은 어머니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오늘 같이 기쁜 날에 다른 것은 몰라도 소 내장이라도 사 가지고 가서 영호에게 국이나 끓여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영호는 어머니하고 헤어져 신문지국 쪽으로 걸어갔다.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온 영호다.
그러나 오늘은 길가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고 더욱 초라하고 가엾게 생각되었다. 큰 거리에서 은행 건물의 뒤를 돌아설 때였다. 영호만한 아이가 그보다 작은 꼬마와 싸우고 있는 것에 마주쳤다.
『왜 때려!』
구두닦이 통을 한쪽 어깨에 메고 있는 꼬마가 큰 아이에게 대들었다. 그러자, 큰 아이는 또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영호는 날쌔게 큰 아이의 팔을 잡았다. 큰 아이는 영호를 노려보았다.
『왜 그래』
하고 소리쳤다. 큰 아이도 구두닦이 아이었다.
『왜 조그마한 아일 때리나?』
영호는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여긴 우리 장소란 말야』
큰 아이가 꼬마에게 소리쳤다.
『내가 여기에서 구두 닦았어. 그저 지나갔잖아』
대드는 품이 꼬마도 만만치 않다. 누가 준 권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큰 아이는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을 영호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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