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호가 상진이를 신문지국에 오라고 한 날이다. 신문이 배달하고 돌아온 영호는 저물어 가는 창 밖을 몇 차례나 내다보았다.
직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지나간다.
-그렇게 쉽게 될 줄 알았더면 그 다음날이라도 오라고 했다면 좋았을 걸 하고 영호는 후회했다.
그때 구두닦이통을 어깨에 멘 상진이가 문 밖에서 기웃거렸다. 영호는 반가왔다. 반색을 하며 밖에 나가
『들어와라!』
상진의 손을 끌어당겼다. 영호는 상진이를 데리고 지국장 아저씨의 책상 앞에 갔다.
『아저씨 이 애예요』
『응 꼬마로구나!』
지국장 아저씨는 의외로 작은 아이라고 생각되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호는 상진이하고 약속한 날 신문 배달을 끝내고 지국에 돌아와보니 지국장 아저씨는 사무실에 돌아와 있었다.
영호는 상진이에게 자신있게 말을 했으나 막상 지국장 아저씨에게 청을 하려고 하니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말을 했다.
『저…아저씨!』
『뭘?』
『아저씨 부탁 하나 있어요』
『무슨 부탁인데?』
하고 영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호는 그날에 있었던 상진이와의 이야기를 했다. 영호는 아저씨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러니까 그 애에게 구두 닦을 장소를 얻어 주자는 거지?』
『네』
『영호도 제법이구나 그런 생각을 다 하는 걸 보니, 그렇게 하지 좋은 일인데…』
하고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그러지, 있어』
하고 좋아했다.
『아저씨 어디예요?』
『응 저기 동해루가 있지』
『네』
『그 옆에 내 친구가 어제 청호다방이라는 다방을 개업했어』
『어제요』
『응 그럼 당장에 가 볼까』하고 지국장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포도 다방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 올 때까지 기다려』하고 지국장 아저씨는 밖에 나갔다.
영호는 지국장 아저씨가 청포도다방에 간 다음 동해루 앞을 지나다가 그 옆집 앞에 화환들이 많이 서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지국장 아저씨의 부탁이면 들어주겠지 영호는 어쩐지 자신있게 생각했다. -그래도 다른 애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뒤따랐다.
신문 배달을 나갔던 큰 학생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영호 너 왜 집에 안 갔니?』덕길이가 말했다.
『지국장 아저씨에게 뭘 부탁드렸어』
『배정되더니 아주 어른답구나』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영호는 따라 웃었다. 그때 지국장 아저씨가 웃으며 들어섰다.
『영호야 잘 됐다. 문 앞에 장소도 빌려 주고 또 일이 없을 때 다방 안을 청소도 해주면 한 달에 얼마간의 돈도 주겠다고 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영호는 자기의 일처럼 고마왔고 또 기뻤다.
『그 애 모레나 글피쯤 올 거예요』하고 영호는 내일이라도 들러 보라고 할 것을 이삼 일 후에 들러보라고 했다고 또 후회를 했던 것이다.
『너 말야 가끔 다방 안을 청소도 하면 한 달에 얼마간의 돈도 주겠다고 했다.』
상진이는 고맙다는 인사는 못했으나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 나하구 가보자』하고 지국장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상진이는 대답하면서 영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영호도 상진의 밝은 얼굴을 보자 마음이 흐뭇했다. 영호도 상진이와 함께 지국을 나섰다.
지국장 아저씨는 성큼성큼 앞서서 걸어갔다. 영호와 상진이는 말없이 지국장 아저씨를 뒤따라 갔다.
지국장 아저씨는 다방 앞에 세워 놓은 화환 옆에서 영호와 상진이를 기다렸다.
영호와 상진이는 뛰기 시작했다. 상진이가 멘 구두닦이통이 덜컥덜컥 소리를 냈다.
『들어와라』
하고 지국장 아저씨가 먼저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영호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상진이와 함께 들어갔다.
지국장 아저씨는 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가서 앉았다. 영호와 상진이에게 손짓을 했다. 두 아이는 그쪽으로 갔다.
『김형 이 애예요. 부탁한 아이가…』지국장 아저씨가 상진이를 가리켰다.
『이런 꼬마가…』놀란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내일부터라도 문 앞 옆에서 손님들 구두를 닦고 또 지나가는 사람이나 다른 사무실의 구두도 닦고 또 가끔 다방 안도 쓸고 알았지』주인아저씨는 부드러운 말씨로 말했다.
『네』상진이는 대답하면서 머리를 꾸벅했다.
『그럼 가봐라!』지국장 아저씨가 말했다.
『감사합니다.』상진이를 대신해서 영호가 인사를 했다. 두 아이는 밖으로 나왔다.
『너 잘 해라!』
『응』상진이는 영호며 지국장 아저씨며 또 다방 아저씨가 고맙게 생각되었다. 정말로 기뻤다. 자기와 같은 구두닦이 아이도 도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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