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형일이네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형일의 중학교 입학식 때문이다. 입학식이라고 해도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데도 형일이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아버지며 형철이 유미 모두가 마음이 들떠 있었다.
형일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첫 아이인 형일이가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한 것이 어제 같은데 이미 8년이라는 세월이 어느덧 흘러가고 오늘부터 중학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개무량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 탈 없이 성장해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이 고맙게만 생각되었다.
앞마당에서 지붕 위로 바라보이는 은행나무가 오늘 아침은 더욱 푸르러 보이며 대문 밖에서 바라보이는 저 멀리 정거장 뒷산의 아카시아 숲이 아침 햇살을 받아 푸른 빛이 더욱 아름답다.
『엄마!』
형철이가 저희 방에서 마당에 내려서며 소리쳤다.
『병신…』
형일이 멋쩍은 듯이 말했다.
형일이가 금단추의 까만 중학 제복에 금색깔의「중」자의 모표가 달린 모자를 쓰고 마당에 나선 것이다.
『왜 그러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청에 나섰다.
『엄마 형 정말 중학생 같지?』
형일이가 까불어댄다. 어머니와 아빠가 기쁜 얼굴로 바라본다. 유미가 대청에서 뛰어내려가 형일의 제복을 만져본다. 형일은 어쩐지 으쓱하기도 하고 또 어색한 것 같기도 하다.
『중학생 같구나 의젓한 게…』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중학생 같구나가 뭐예요 진짜 중학생인데 의젓하지 않겠어요』
어머니도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형일의 중학 제복과 제모는 어쩐지 이상하기만 하다. 모자도 좀 크고 옷도 헐러하고 소매가 좀 길다. 그래도 형일은 자기 자신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다.
『엄마 빨리 준비해』
형일이가 대청 앞에서 재촉을 한다.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벌써부터 이러지』
하고 어머니는 또 웃는다.
오늘 입학식에는 어머니가 형일을 데리고 가게 되어 있고 형일은 대문 밖에 나갔다. 형철이도 뒤따라 나간다. 저고리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서 있는 형일이에게
『형 누굴 기다려?』
형철은 반짝거리는 모표를 바라보며 묻는다.
『아니』
형일은 멋쩍게 대답했다. 형일은 대문 밖에 나갔지만 할 일이 없다. 공연히 그러고 싶은 것 같다.
『어허 형일이가 중학생이 됐구나!』
형일이네 뒷쪽에서 사는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오늘부터가 아니예요 어제도 입어 봤어요』
하고 형철이 깔깔댄다.
『그렇겠지 아무리 입고 싶어도 밤에 잘 때에는 벗고 자거라』
큰 소리로 웃으며 아저씨는 언덕을 내려갔다. 형일이와 형철이도 따라서 웃었다. 대문소리가 나며 아버지가 나오고 뒤따라 어머니와 유미도 나왔다. 아버지가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다.
『밖에서 한 번 폼을 재보는 거야』
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아빠 약속대로 비둘기 사 와야 해』형철이가 아버지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학교 가서 침착하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그럼 갔다올게』
아버지는 언덕을 내려간다.
『아빠 다녀오셔요』
두 아이는 함께 같은 말로 인사를 했다.
『그래』
며칠 전이다.
밖에 놀러 나갔던 형철이가 숨차게 집으로 달려왔다.
『형 경수는 말야 저의 아빠가 입학 기념으로 팔목시계를 사 준다고 했어』
형철은 형일이에게 숨찬 소리로 보고를 했다.
『우리 아빠는 뭘 사 줄까?』
형철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나도 팔목시계 사 달라고 해야지』
형일이 으시대며 말했다.
『형 시계는 할아버지가 사 주신다고 했단 말야』
『그렇지 그럼 뭐가 좋을까?』
형일이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했다.
『자전거?』
형철이가 자신 없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전거는 너무 비싸서 안 돼』
『그럼?』
『글쎄…』
형일이와 형철은 멀리 항구 쪽의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뭐가 좋지?』
『뭐가 좋을까?』
『그래 좋은 것 있어』
형철이가 기쁜 소리를 질렀다.
『형 뭐야』
『비둘기!』
『비둘기 그래 좋아』
형철이는 기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는 척하다가
『비둘기는 저금한 돈이 있잖아』하고 말했다.
『그래도 얼마 안 된단 말야 그 돈 갖고는. 다른 걸 하자』
『응 그럼 아빠에게 비둘기를 사 달라고 해』
『비둘기가 좋아』
그날 밤 형일이와 형철은 아버지에게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비둘기를 사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두 아이의 청을 기쁘게 받아 주었던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