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분단은 근본적으로 인간-자신, 인간-이웃, 인간-하느님의 「분열」이 민족분단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것은 동시에 분단된 한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질서」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일제의 압박에서 풀려났으나, 동시에 전승국인 미ㆍ소에 의하여 38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된 후 오늘과 같은 상태에 처하여 있는 것이다.
다른 편으로는 남북한 대립이 처음부터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였으며 대립적 정치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영토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서로 유일한 정통정부임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남한에도 북한에도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사회화, 사회적 평등화, 문화적 다원화가 정의실현을 통한 평화를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반(反)독재-민주화 투쟁」「사회개혁-사회주의 혁명」「쟁취-계급투쟁」「이데올로기-의식화」등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 그것을 암시해 주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때와 곳에서는 그 상황이 얼마만큼 심각한지가 짐작되는 것이다.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질서가 이룩되지 않고서는 평화를 논하기가 어렵다. 그 뿐 아니라, 마치 정의가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실현되지 못하듯이, 평화도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의의 실현은 공동선을 전제로 각자에게 돌아와야 할 것이 보장될 때 가능하며 「형제자매의 사랑」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는 「정의의 내용을 초월하는 사랑의 결실」이며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결실로서 사회「질서」안에 구체화되는 것이다.
우리의 분단 상태에서 어떻게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이전에 남한이나 북한의 평화적 일치를 논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평화가 정의의 실현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모든 현실적 질서,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질서 안에서의 정의의 실현이 불가결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우선 정치적 질서 안에서의 정의의 실현은 「정치적 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 즉, 각자가 민주국가의 주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질 그 자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경제적 질서 안에서의 정의의 실현은 「경제적 사회화」라고 볼 수 있다. 생산과정의 참여나 소득분배에 있어서 각자 공평하게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문화적 질서 안에서의 정의의 실현은「문화적 다원화」라고 볼 수 있다. 여하한 상명하복의 메카니즘에도 구속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고도로 발달한 개인주의의 표현이 아니라 공동선의 전제됨과 동시에 각자에게 돌아갈 권리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이의 공동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1945년부터의 남북한의 관계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상태의 연장이었다. 구사적-정치적 비밀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한반도의 평화가 곧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남북한의 공식적 대화-접촉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민간의 차원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접촉도 없는 셈이다.
「불신」의 요소가 물론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요소까지 상호 작용하여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대화가 어려우며, 남북한은 상호「외국인」이 아니라「동족」이면서도 분단경계선을 보면「적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물론 예수님의 말씀처럼『비둘기처럼 양순하고 뱀처럼 슬기로워라』하겠지만, 이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불신의 해소는 남북한 간의 관계에서 직접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남한 내에서 그리고 북한 내에서 우선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뜻인가? 남ㆍ북 집권자들은 남북 상호간에 불신을 해소할 수 있기 전에, 자기국민 또는 인민과의 관계에서 우선 불신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자기 국민 또는 인민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신이 해소되지 못하고 긴장상태에서만 집권이 가능하다면, 평화는 아직 올수 없다는 뜻이며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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