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개념은 서민적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단 말이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정의를 내리자면 「좋은 것을 정당하게 소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는 확실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행복도 달라진다.
세상을 모르는 어린이에게 고층빌딩이나 수만 평의 땅이 소유로 되어있다 해서 그 어린이가 행복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따뜻한 가정이 있고 놀이터가 있고 친구가 있어야 행복할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까지 자기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행복이란 것은 이 과정에서 오도될 수 있고 빗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은 교육이 필요하다.
이 행복교육을 동양에서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다루었고 서양에서는 철학적이 인생론에서 다루었다. 동양에서는 태고 중국의 주나라 무왕에게 정치고문인 기자라는 사람이 치세강령으로 상정한 홍범구주(洪範九躊)속에 제9범주에 5복이라는 강령으로 계시되어있다.
『왈 장수요, 왈 부귀요, 왈 강녕이요, 왈 유호덕, 죽 유유자적하면서 덕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것이요, 왈 고종명, 즉 편한 죽음을 도모함이다』서양철학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에서는 부, 건강ㆍ명예, 행운ㆍ이 네 가지를 좋은 것으로 쳤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지혜를 발견한 그들은 이 네 가지를 소유하는 것이 반드시 인생의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 네 가지는 좋기는 하지만 반대로 이것들은 나쁜 운명으로 몰아넣는 원인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세속적인 좋은 것들을 아예 무시하거나 조절하는 지혜를 가진 자가 행복하다고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맨발로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옳은 것에 대하여 토론하였고 리오게네스가 통속에 살며 대왕의 방문도 마다하였다지만 그리스인들도 가난이 좋은 것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중국의 홍범구주 6극(六極) 즉 여섯 가지 불행 속에는 우(憂)와 빈(貧)이 들어있다. 가난은 6악 중의 하나이다. 이 5복 6악의 사상은 우리나라 백성의 생활 속속들이 스며져 부귀영화를 숭상하고 가난을 기피하는 인생론은 보편화되어왔다. 그래서 「가난구제는 지옥높이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가난구제는 아예 마음조차 먹지 말라는 뜻이다.
이러한 인생관 속에서 우리나라 초생교회 순교자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부귀영화와 일가몰살의 유혹과 위해를 견디면서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은 성서교리에 능통하지도 못했던 그분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이 시대에 누가 만일 가난하게 살라,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더 좋다고 떠들고 다녔다면 미친 소리 한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가난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큰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종류의 것들을 가지고 산상교훈에서 하느님 나라의 8복론을 가르치셨다. 첫째 가난한사람이 행복하다. 왜냐하면 하느님나라를 소유하는 왕부자가 되겠기 때문이다. 가난 자체가 덕스러운 것은 아니다. 마음이 물욕으로 차 있으면 사실은 언제나 물적으로 언제 불만족스럽고 더군다나 하느님의 축복이 들어갈 틈이 없다. 마음이 비어있어야 하느님나라의 부를 쌓을 곳이 넓어진다. 그래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되다고 하신 것이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영적으로 부자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유유자적, 물욕에 휩싸여 너절한 생활을 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부자이기 때문이다. 이 묘리를 깨우치려면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만큼이나 깊은 사색을 해야 할 것이고 중국의 도사만큼이나 도를 타극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이치를 군중에게 가르칠 때에는 강력한 하느님의 은총의 힘을 내려주셨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예수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이 마음속에 와 닿았다. 하느님나라의 신비력이다. 둘째행복과 셋째 행복은 첫 번째 행복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였다. 루가복음서는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였다. 징징거리고 우는 사람은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느님나라를 위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은 물론 하느님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다. 주님을 위하여 전답을 버리고 부모형제는 물론 아내까지 버리고 하느님나라를 만민에게 선포하러 다니는 사람은 고달프고 피곤하고 고독하다. 때로는 일이 험난하여 절망에 빠질 때도 있다. 때로는 모함을 당하고 어떤 때는 모욕과 굴욕을 참아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나라를 위하여 우는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는 답답하고 슬프지만 그들은 이 슬픈 마음을 하느님께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 위로는 노력의 대가가 하느님나라에 업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으니 백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며 이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을 것이다』(묵시21, 4)
셋째로 행복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라 하고 했다. 온유한 사람은 쉽게 실망하지 않으며 끈기가 있고, 까다롭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성내지 않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러한 성격은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명예욕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가질 수 있다. 성서에서는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고 남의 땅을 유린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하느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할 사람들은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고 온유한 사람들이다.
시편에서는『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37.11)라고 했다.
하느님나라에서 강한 자는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고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들이다. 온유함은 하느님나라를 바라보며 가난하게 된 사람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세 가지 행복은 하느님나라 시민의 개성적인 품격이고 나머지 5가지는 사회인으로의 품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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