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이 끝난 후 형일이, 경수, 영호의 세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나 세 어머니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세 어머니들은 즐거웠다. 오늘은 모두 똑같이 첫 아들들을 중학에 입학시킨 날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감개무량하다. 더욱이 남편이 없이 과일 장사를 하고 또 어린 아들은 신문 배달까지 하는 영호 어머니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영호의 등록금을 위해서 애써준 형일의 아버지와 또 등록금을 내놓은 천 사장의 일은 그동안 영호의 어머니의 머리에서 떠난 일이 없었다.
영호 어머니는 등록금을 형일의 아버지를 통해 받은 다음날 천 사장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으나 오늘은 중학교의 제복을 입은 영호까지 데리고 천 사장에게로 다시 인사를 가려고 생각했다.
경수 어머니의 경우도 영호 어머니의 경우에 못지 않았다. 어머니가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없는 집이 싫어 한동안 탈선샜던 아들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후 경수는 생활을 바로잡기는 했으나…
형일이 영호 경수 세 아이 중에서도 영호는 한때 중학에는 못 갈 줄로 생각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오늘 새로운 제복을 입고 입학식까지 끝내고 보니 어쩐지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새로운 중학 제복을 입어서인지 또는 어머니들과 함께 걷는 때문인지 세 아이들은 전처럼 길에서 장난을 치지 않는다.
학교길을 다 내려와 큰 길에 들어섰을 때 형일의 어머니는 그대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이나 하고 갑시다.』형일의 어머니가 말했다.『그렇게 해야죠. 오늘이 어떤 날인데 그러지 않았다간 심통이 나서 또…』경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십 원을 아껴 쓰는 어머들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인색할 수는 없는 것이다.『엄마 통닭 사 줘!』형일이가 어머니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엄마, 통닭이 좋아!』 경수도 기쁜 소리를 질렀다.『그래 그래』 경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나 영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호의 어머니의 생각은 복잡했다.
이렇게 될 줄을 알았다면 학교에서 두 어머니와 헤여졌다면 좋았을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했다. 영호는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다. 영호의 마음 속에는「어른」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없이 살아오는 동안에 그렇게 된 것이다.『엄마 집에 가!』영호가 불쑥 말했다. 영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애는 무슨 소릴 하니 오늘은 내가 한 턱 낼게』형일의 어머니가 영호의 손목을 잡았다.『영호야 함께 가는 거다』경수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영호의 어머니와 영호는 사양할 수 없게 되었다. 큰 거리의 통닭집 앞에 가까이 가자 형일이가 먼저 뛰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형일은 『어허!』하고 되돌아 나왔다. 통닭집은 빈 자리가 없었다. 모두가 오늘 중학에 들어간 아이들과 그 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엄마 앉을 자리가 없어』형일이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그래…』 하며 형일의 어머니가 통닭집을 기웃거렸다.
-세상 부모들의 심정은 비슷한 모양이구나.『다른 데로 가야겠어요』형일의 어머니가 경수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어디 조용한 중국집에나 갑시다.』경수 어머니가 말했다.『그럽시다』하고 형일의 어머니가 걸음을 옮겼다. 중국 식당은 멀지 않을 곳에 있었다.
그러나 거기도 역시 신입생들과 그 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돌아서 나오려고 하는데 한쪽에서 몇 사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형일이와 경수가 먼저 그 자리로 뛰어갔다. 형일의 아버지는 정시에 퇴근했다. 남아서 일할 것이 있기는 했으나 다른 동료들에게 부탁하고 통근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통근차를 내렸을 때에는 아직 해는 서산 위에 있었다. 이같이 제 시간에 퇴근한 일은 근래에 없었던 일이다. 형일의 입학 기념으로 비둘기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얼마 전이기도 하지만 오늘 입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선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형일의 아버지는 자기들 집이 있는 언덕을 왼편으로 바라보며 통근차를 타고 온 길을 도로 북쪽으로 걸어갔다.
고개를 넘기 전에 있는 과수원집에 가서 비둘기를 사기 위해서이다. 형일의 아버지는 비둘기 값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형일이가 중학 입학 기념으로 비둘기를 선물해 달라고 했을 때 형일의 아버지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른 집 아이들 같으면 국민학교에서는 가져 보지 못했던 시계나 또는 만년필이나 다른 물건을 사 달라고 하거나 그 부모들이나 주위 사람들도 그러한 것을 선물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형일이는 그게 아니었다. 형일이의 아버지는 그러한 형일이가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형일의 아버지가 과수원 옆길로 주택이 있는 언덕을 올라갈 때 어디서인지 파닥파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들기떼가 공중에 날아올라 한 바퀴 낮게 돌더니 저쪽으로 날아갔다. 형일의 아버지는 날아가는 비둘기떼를 저녁 햇빛을 받으며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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