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의 아버지는 두 마리의 새끼 비둘기가 들어 있는 종이 상자를 들고 과수원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뭔가 선물이라도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과수원집 할아버지는 형일이네 할아버지의 옛 친구였다. 형일이가 중학 입학 기념으로 비둘기를 선물해 달라고 한다는 형일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고『그 참 기특한 놈이구먼, 하구 많은 걸 두고 하필이면 비둘기를 갖고 싶어하다니, 새를 좋아하는 저의 할아버지를 닮은 모양이군…』감동된 어조로 말했다.
그리하여 형일의 아버지는 형일이와 형철이가 참새를 길렀던 이야기며 두루미를 보호하자는 포스타를 그려 백학동에 가서 붙인 일이며 비둘기는 사람이 가두어 놓지 않고 사육할 수 있는 점을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 보통이 아니구먼. 그런 아이들이면 돈이 뭡니까. 잘 사육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 판인데…』하며, 과수원 할아버지는 쾌히 비둘기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둘기를 사육하는 데 필요한 주의까지 자세히 말해 주었던 것이다. 시내로 들어서는 낮은 언덕을 올라서면서 -이놈을 집에 있는지, 비둘기 비둘기 하더니 오늘은 좋아하겠구나.
형일의 아버지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담았다. 비둘기 상자를 들고 있는 형일의 아버지의 발걸음은 가볍다.
해는 서산 너머로 기울어졌으나 아직도 대낮처럼 환하다. 서쪽 하늘이 감빛으로 물들었다. 형일의 아버지가 오늘처럼 퇴근길에 저녁놀을 바라보는 것도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다. 언제나 잔업 때문에 늦게 퇴근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약속한 대로 오늘 비둘기를 선물하게 된 것이 아이들처럼 기쁘다. 대문을 들어서면서『형일아!』큰 소리로 불렀다.
다른 때에는 언제나 유미를 불렀던 아버지다.『아빠 비둘기 사 왔어?』먼저 달려나온 것은 형일이가 아니라 동생 형철이다.『그럼!』아버지는 손에 든 종이 상자를 높이 들어보였다.『야 아빠 최고다!』형철이는 기쁘게 소리쳤다. 형일이는 저희 방에서 뛰어나오고 유미며 어머니도 마당에 나왔다. 비둘기가 들어 있는 상자는 형철이가 안고 있다.『비둘기는 형일이 건데 네가 왜 신나서 이러니?』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그렇지 형일이 건데…』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함께 기르기로 했단 말야』형철이가 큰 소리로 말하자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형철은 상자를 마당에 놓고 뚜껑을 열려고 했다.『방에 갖고 들어가, 날아가면 어떡허니』형일이가 말했다.『그래 방에 들어가서 보라!』아버지가 말했다.『그렇지』하고 형철은 상자를 들고 안방으로 향했다. 식구 모두가 형철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입학식 잘 됐니?』아버지가 묻자 『네 잘됐어요 영호네랑 경수네랑 함께 점심도 먹고… 』 어머니가 대답했다.『잘했어』아버지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새끼 비둘기 두 마리는 잿빛이었다. 눈알 둘레가 감빛인 비둘기는 목이 푸른 빛깔이다. 날개도 푸른 빛깔이다. 푸른 빛깔만이 아니다. 푸른 색깔처럼 보이나 여러 가지 색깔이 섞여 있는 것이다. 비둘기는 고개를 자꾸만 뺑뺑 돌린다. 식구들이 삥 둘러앉아 내려다본다.『아빠 비둘기집이 있어야지?』형일이가 걱정되듯이 말했다.『그럼 있어야지』아버지가 말했다.『오늘 아빠가 가져올 줄 알았다면 낮에 비둘기집을 만드는 걸…』형일이가 후회되듯이 말했다. 『그래 아빠를 신용 못했다는 거지』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니지만…』 형일이가 머리를 긁적거렸다.『형 참새 넣었던 새장에 넣어』 형철이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오늘 밤은 그렇게라도 해야지!』어머니가 말했다.『나 가져올게!』하고 형철은 밖으로 나갔다.『형철이는 참 행동파야 그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행동에 옮긴단 말야』어머니가 유쾌하게 웃었다.『그게 형철의 특징인데…』 아버지가 웃었다.『아빠 비둘기 뭘 먹어?』아무 말도 안하던 유미도 한마디했다.『콩을 가장 좋아하지만 다른 곡식도 먹어』아버지가 유미를 안으며 말했다. 형철이가 새장을 뒷마당에 서 들고 들어왔다.『너 먼지 털었니?』어머니가 말했다.『아니』 형철은 도로 마당으로 나갔다. 형일은 두 마리의 비둘기를 새장에 넣었다. 새장에 넣은 비둘기를 바라보던 형철이가 불쑥 말했다.『아빠 나는 선물이 없어?』『넌 또 무슨 이유로 선물해야 하니?』아버지가 껄껄 웃었다.『아빠 참 소식 불통이야』『뭐가 소식 불통이니?』『나는 5학년에 진급했단 말이야』『아 그렇지 형일의 중학교 입학만 큰 일인 줄 알았지 형철이나 유미의 진급은 미처 생각이 들지 않았구나…』아버지가 웃었다.『그봐요 아빠는 나보다 머리가 빨리 돌지 않는단 말야』형철은 아버지가 늘 어머니에게 농담으로 하는 말을 했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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