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자연」에 대한 종래의 관찰안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신앙의 힘은 시인적 사명을 자각한 17세기 영국 시단의 3종교 시단의 작품에 섬세한 시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종교시는 단조롭고 시적 가치가 없다는 신화를 깨뜨린 시인들이었다.
앞서 인용한「사랑」의 시인죠지 허버트(1593-1633) 명시「후퇴」「세계」의 시인 헨리 보은(1622~1659) 유년송가의 선구 토마스 트래언(1636-1674)이 3시인들은 후세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그들은 똑같이「웨일즈」출신이며「켈트」족의 신비를 혈관에 간직한 시인들이다. 그들의 시가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종교를 시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한결같이 설교를 시로 옮기려 하지 않았고 현실을 정확하게 관찰해서 탁월한 시혼과 기교로 인간의 실재를 그리고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는 데 성공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으로서 진지했고 생활에 충실했으며 시인적 사명감에 투철했다는 점을 독자들은 명심해야 하겠다.
나의 하느님이
그 안에 살고 계시지 않는
웅장한 집을 아무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깨달았노라.
인간이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웅장한 어떤 집이 있었으며
또는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의 피조물에겐
만물이 쇠미해야만 하도다
그러므로 하느님이여
웅대한 궁전을 세우사 오 그대는 안에 살으소서
드디어 그대와 더불어
살을 수 있도록!
그때는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베푸사
세계가 우리에게 봉사하듯 우리는 그대에게 시중 들여 세계와 우리는 그대의 하인이 되겠나이다.
-조오지허버트「인간」1~6、49~54-
많은 시심과 균형미를 갖춘 조오지 허버트의 시는 때로 한없이 섬세하기 때문에 거듭 숙독할 만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시는 순전히 종교적인데 그것은 성직자로서 그의 전생활이 하느님에 바쳐졌기 때문이다. 그는 시작에서 실재를 추구함에 있어서 신앙에 궁극적인 귀결점을 찾게 되었지만 그 창작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뛰어난 시재는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다. 그는 그 초기시에서 뭇 시인들이 사랑을 읊는 데만 사용한 정형시 쏘넷트 형식을 하느님을 선양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안타까와했다.
시는 오로지 사랑의 여신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비너스의 의상을 입는 것일까?
왜「당신」에게 대해 쏘넷트가 씌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불타는 당신의 성전에 대한 노래가
읊어지지 않는 것일까?
그대의 사랑은
어느 여인을 칭송하듯
그대의 찬송을 높여줄 수 없는 것일까?
「그대」의 비둘기는 그 비상에서
「큐피드」를 쉽사리 앞지를 수 없는 것일까?
-G. 허버트-
허버트는 시의 본연의 내재적 운술적 가치를 격하시키지 않은 채 시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읊어 인간의 영혼을 높일 수 있는 진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완벽한 표현의 성과를 올린 소박한 어휘 구사로 허버트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이다.
정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계속해서 강력하게 훌륭한 일을 하는 그는
그의 이웃인 하느님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가장 성실한 사람이어라.
그에게 권력도 아첨도
그 사명 송행을 가로막거나
방해할 수 없도다.
-G. 허버트「지조」1-5
허버트의 이 명시는『행복한 용사는 어떤 사람일까?』로 시작되는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 윌리암 워어즈워스의 걸작시「행복한 용사의 성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오지ㆍ허버트는 귀문 출신이며 산수가 수려한「케임브리지」대학의 명문 트리니티 칼레지에서 수학하고 정신으로 출발했으나 형이상학파 시인 존던(1572~1631)의 영향을 받았다. 천상의「뮤우즈」에 일생을 바치려는 굳은 뜻으로 시를 쓰기로 했고 성직을 택하게 되었다. 그의 시는 주로 명성전이 있는「쏠즈베리」근처의「베머어트」에서 성직생활을 하는 동안 창작된 것이다. 모친의 친구이었던 존던의 감화로 직업상의 방향 전환을 했지만, 시인으로서는 존던의 후계자가 아니며 또 어떤 일정한 시인의 추종자도 아니었다.
시적 기교 면서 무궁하게 다양했고 주제 면에서 타자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개성적이었던 허버트의 눈부신 시재의 연원을 찾으려면 중세기 프랑스 음유시인들의 시적 기교를 살펴 보아야 한다.
조지 허버트는 하느님의 영광을 선양하기 위한 음유시인이었다.
중세시대의「프로방스」의 음유시인들이 사랑하는 구원의 여성인 애인에게 봉사하기 위해 시를 읊었던 것처럼 허버트는 절대자인 하느님을 위해 그 섬세한 정서를 노래 부르는 곳에 시인으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예일대학의 턱키 브룩크 교수는 허버트의 시와 중세「프로방스」의 시를 비교한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개관적으로 볼 때 타당한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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