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라고 하면「철학」과는 거리가 먼 사회, 경제적인 것으로 흔히들 생각한다.
사실은 공산주의라고 하는 사회주의나 그것과 대립되어 있다고 하는 자본주의에는, 말을 하든안하든「철학」이 있는 것이다.
이론적 체제나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체제나 다 인간과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이나, 목적은 될 수 없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여 평가하지 않고「무조건 비호」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는 칼 마르크스가 비판하던 그 시대의 자본주의가 되고 공산주의는 스탈린이 만들어 낸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종교를 「과학만능주의적」으로 비판하여 무조건 신화화하거나 미신화하고 공산주의를 「형이상학적으로만」「형이상학적」으로 비판하여 무조건 악마시하게 되면,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망치는 비극이 될 것이고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름으로 신을 망치는 희극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하여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비판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무조건 비호나 개방이나 반대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육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사목적 관점에서 보면 남북 분단 상태에 처해있는 그리스도인들은「반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무조건「종교적으로도」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는「무엇을 위하여」무엇을 반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왜」받아들이거나 반대하느냐를 규명하는 것이 더 중요시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으며,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제대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그 「사목」(司牧 :사목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서 나오는 인간구원의 봉사활동이라고 할 수 있음)실행의 방법으로써 그러한 것을 탐구하여 분단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 있게 설명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분단 상태에 있는 한국의 이러한 사목적 관심은 멸공이나 용공이나 친공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 인간은 「진리와 사랑」안에서 살 수 있기 위하여 복음정신에 의한 「가치판단」과 이에 따르는 「삶」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한사람만의 구원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구원」과도 관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분단 상태의 사목은 그리스도인들이 인간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우선 양적으로나「질적으로」나 필요이상으로 분단 상태를 악화시키는「이론적」또는 실천적 조건들로부터 해방이 가능한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철학」또는 이론적 문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리라면 그 해결방법은 전혀 없는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인간발전과 인간다운 사회를 목적으로 한다면,「철학」보다는「장치」가 더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란 근본적 사상에서 오는 차이는 서로하면서도, 함께 살 수 있으며 함께 삶으로써 그 근본적 사상에도 다소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체적 생활양식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추상적으로 사상의 대결을 벌이는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인의 사상의 지배를 위한 것이다. 같은 인간을 논하면서도 인간의 개념 차이 때문에 문제가 있기는 하나, 인간을 위한「참된 사회적 실현」이 어느 체제에서 오든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 들일수가 있겠는가?
통일을 전제로 하는 사목적 관점에서는, 한편으로는「오류」와 다른 편으로는 이 오류와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사회체제」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느 체제에서 오든지 인간을 위한 참된 사회실현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반도의 분단 상태에서는, 단순한 개인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민족」의식을 전제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여기에서 인간은 어떤 막연한 인간 또는 특정한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이」를 의미하는 것인데. 한반도의 분단 상태에서는 인간「민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이 「우리」라고 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라고 했을 때만 민족공동체가 가능한 것인데, 공동체구현은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 실현되는 「교환정의」만으로는 실현되지 못한다.「분배정의」가 실현되어야 「민족공동체」와 「공동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통일사목적 관점에서 보면 남북한에 실현되어야할 분배정의가 민족공동체 구현을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능력 있는 이들이 좀 더 봉사할 수 있고 필요한 이들이 좀 더 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족공동체 의식이 없는 것이며, 그렇다면 민족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며 통일도 결과적으로 필요 없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통일사목적 전망에서는 한반도 「위에」, 민족「밖에」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안에」또는 「함께」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동일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사회참여를 통하여 교회는 그 일치의 의미와 힘으로 민족공동체 구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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