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들이 형일이네에 온 지도 2주일이 되었다. 비둘기들은 닭장 같은 쇠그물 속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비둘기의 집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날 형일이와 형철은 큰 모험이나 하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비둘기들은 날아가지 않고 마당에 뿌려 놓은 먹이를 쪼아 먹으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비둘기들은 형일이네 집이 자기들도 살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두 형제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날부터 비둘기들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푸득 날아서는 장독대 옆에 말뚝을 세우고 올려 놓은 비둘기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 지붕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리고 뒷마당의 은행나무 아래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강아지 피스가 밖에 나갔다가 집을 찾아드는 것처럼 비둘기들도 어디엔가 날아갔다가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이제 비둘기들은 완전히 형일이네 식구가 된 것이었다.
비둘기들을 밖에 처음 내놓은 첫날 가끔 집적거렸던 강아지 피스도 이제는 비둘기들을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비둘기들도 피스가 있건 없건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한 얼굴을 했다.
형철은 그동안 더러워지지도 않은 비둘기집을 아침마다 청소를 해주었다. 형철이가 불만스럽게 느껴온 일은 아버지가 약속한 대로 페인트를 사 오지 않은 일이었다.
형철은 비둘기집에 하얀 페인트 칠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는 토요일에 페인트를 사 오겠다고 다시 약속했으나 아직도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학교에서 돌아와 유미와 함께 대청에서 비둘기들이 마당 안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쪼아 먹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형철은
-그래 민호네 가보자-
하고 생각했다.
바로 그제 담배 가게를 하고 있는 민호네가 진열장을 하얀 페인트로 칠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쓰다 남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잘 봐!』
형철은 불쑥 유미에게 말하고 일어섰다.
『오빠 어디가?』
『나 민호네 갔다 올게』
유미가 뭐라고 하려고 했다. 그러나 형철은 대문으로 뛰어갔다.
『오빠 빨리 와!』
유미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래』
형철은 대문 밖에서 소리쳤다.
형철은 언덕을 내려간다. 햇볕이 뜨겁다. 형철은 언덕을 내려가다가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형철은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한다.
『응… 그래서였구나…』
나직히 혼잣말을 하며 또 주위에 눈길을 다시 보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집 울타리 안과 밖에 피어 있었던 진달래꽃이 어느덧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둘기에 열중하여 별로 바깥을 돌아다니지를 않았던 것이다.
바다 저 멀리까지 반도처럼 길게 뻗어 있는「청학곶」끝에 있는 등대의 하얀 빛이 밝은 햇빛에 더욱 빛나 보인다.
『민호야!』
형철은 아직 페인트 내음새가 풍기는 담배 진열장에 눈길을 보내며 불렀다.
『오빠 심부름 갔다』
민호의 여동생이 담배 진열장 조그마한 유리문을 열고 웃으며 말했다.
『먼데 갔니?』
『아니 아랫동네…』
형철은 힘이 쑥 빠지는 것 같다. 그러나 곧 형철은 콧노래를 부른다. 형철은 언덕길 쪽으로 갔다. 아랫쪽을 바라본다. 언덕 아래에 민호가 보였다.
『민호야!』
형철은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왜?』
민호는 큰 소리를 질렀다.
『빨리 와라!』
『그래』
민호가 언덕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형철은 그 자리에서 민호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게 생각되었다.
형철은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중간에서 마주쳤다.
『왜?』
민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디 갔다 오니?』
형철이도 숨이 차다.
『넌 몰라도 돼…』
민호는 눈으로 웃는다.
『왜?』
민호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해서 또 묻는다.
『걸어가며 말할게』
형철은 민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깐 사이기는 하나 형철은 궁금했다.
『민호야 니네 페인트 있니?』
『응 있어』
『많이?』
『응 많아』
『나 줘』
『뭘 하게?』
『비둘기집 칠하게』
『그래 줄께』
민호는 선선히 대답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형철의 앞에 민호는 페인트통을 내밀었다.
『지금 칠하는 거야?』
『그럼』
『그럼 나도 가』
『좋아』
이제 새하얗게 칠해질 비둘기의 집을 눈 앞에 그리니 형철은 기쁘기만 하다. 가슴이 뛴다.
『너 담배 진열장 봤지?』
『그래』
『내가 칠했단 말야』
민호는 페인트 칠을 하는 솜씨를 알아 달라는 뜻에서 말했다.
두 아이가 형철이네 가까이 이르렀을 때다.
『왜 때리는 거야!』
어린 아이의 날카로운 소리가 산 위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울음 소리와 왁자지껄 싸움 소리가 들려온다.
형철이와 민호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빛났다. 가보자는 것에 두 아이의 마음이 통한 것이다. 두 아이는 산 쪽으로 신나게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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