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철이와 민호는 헐레벌떡 산 위를 향해 뛰어간다. 도중에 있는 형철이네 집을 지나 좁은 돌 층층대를 뛰어올라갈 때까지는 산 위에서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두 아이는 겨우 싸움 현장에 닿았다. 영호네 근처였다. 그런데 두 아이가 현장에 닿았을 때에는 싸움은 식어가고 있었다. 싸운 두 아이는 어떤 어른을 가운데 하고 양쪽에 서서 서로 쏘아보며 으르렁대기만 했다.
형철이네 동네 아이들은 아니었다. 낯선 아이들이다. 형철은 왜 싸웠는지가 궁금했다.
『왜 싸웠니?』
옆에 있는 칠성이에게 물었다. 칠성이는 코를 한 번 훌쩍거리고 나서
『나도 몰라 지금 막 왔어』
하고 대답했다. 싱겁게 됐다. 큰 기대를 갖고 산 위까지 뛰어갔는데…
『이놈들 빨리 안 가겠어』
싸운 아이들을 가로막고 서 있는 아저씨가 소리쳤다. 한 아이는 산 아래로 비실비실 내려가기 시작하고 또 한 아이는 산 위로 올라갔다.
낯선 아저씨가 아이들의 싸움을 갈라놓은 것이다. 아저씨는 아래 위로 걸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고서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모여 섰던 아이들이 와 소리 치며 더러는 산 위로 올라가고 더러는 산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형철이와 민호는 싱겁게 되었다. 둘이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형철아 그게 뭐니?』
하고 칠성이가 물었다.
『페인트야』
『뭘 할 건데?』
『비둘기집 칠할 거야』
『네가 해?』
『그럼』
『네가 할 줄 알아』
『그걸 못해. 민호도 저희집 담배 진열장 칠했는데.』
하고 형철이가 말하자
『그렇긴 해도 칠성이 넌 안 돼』
민호가 우쭐대며 말했다.
『왜 못해 하면 되지』
『정말』
『좋아 내가 해 줄게』
칠성이는 앞장을 서서 으시대며 돌 층층대를 내려간다. 형철이와 민호는 뒤에서 칠성이 뒷모습을 보며 서로 눈으로 웃었다.
대문을 들어서는데
『형철아 너 어디 갔었니?』
어머니가 집에 와 있었다.
『엄마 나 페인트 가져왔어』
형철은 부엌문 앞에 서서 페인트 통을 내밀며 자랑했다.
『어디서?』
『민호네』
『잘 됐구나!』
어머니가 웃었다.
이제부터 비둘기집 페인트칠 공사가 시작될 판이다.
『형철아 너 처음 해보는 거지?』
민호가 한마디 던졌다.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시범을 보여 줄 테니 잘 보고서 해!』
형철은 민호가 뽐내는 것이 아니꼽다.
『뭐 네가 시범을 한다고?』
『응. 생각하기보단 좀 다르단 말야』
듣고 보니 민호의 말도 일리가 있을 것 같이 형철은 생각되었다.
『그럼 네가 먼저 해 봐!』
비둘기집은 형철이네 것이지만 페인트는 민호네 것이다. 형철은 좀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비둘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마당에는 없다. 민호는 페인트 통과 솔을 들고 의젓하게 장독대에 올라섰다. 페인트 통의 뚜껑을 열어본 민호는
『니네 휘발유 없어. 좀 굳어졌어』
고개를 갸우뚱 페인트에 대해 큰 지식이나 갖고 있는 듯이 말했다.
『있어』
형철은 아버지 방으로 뛰어갔다. 형철은 휘발유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들고 왔다.
민호는 휘발유를 몇 방울 떨어 넣고서는 솔로 페인트를 뭉갰다. 그리고서는 지붕부터 칠하기 시작했다.
지붕은 양철이어서 칠하기 어렵지 않다. 옆에서 보고 있는 형철이와 칠성이도 문제 없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지붕을 한 번 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이걸로 끝난 건 아냐. 좀 마른 후에 한 번 더 칠해야 해』
하고 민호는 솔을 형철이에게 넘겨 주었다.
『내가 한 번 솜씨를 보여 줘야지』
형철은 으시대며 비둘기집 앞쪽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인트가 잘 묻지 않는다. 대패질을 하지 않은 꺼슬꺼슬한 널빤지에 페인트가 잘 묻을 리 없다.
『그것 봐 역시 내가 기술자지』
민호가 뽐내며 말했다.
형철은 칠한 데를 몇 번씩 다시 칠했다. 하얗게 되어 갔다.
『어때 이만하면 나도 기술자지 뭐야』
『그래도 나한테는 문제가 안 돼』
민호의 말에 아이들은 깔깔댔다.
아직 솔도 쥐어 보지 못한 칠성이도 한 번 하고 싶다.
『형철아 나도 할게』
『너. 넌 안 돼 보는 것과는 다르단 말야 쉬운 것 같지만…』
형철이가 놀려댔다.
『뭐. 나는 안 된다고 웃기지 마』
칠성은 형철을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정 하고 싶다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뒷쪽이나 해 봐!』
『좋아 뒷쪽이라도…』
하고 칠성이는 코를 훌쩍거렸다.
『형철아!』
대문 밖에서 누가 불렀다.
『지금 공사 중이다.』
하고 형철이가 소리쳤다.
아이들이 우르르 마당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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