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군인주일」을 며칠 앞두고 기자는 중동부 최일선에서 적과 마주하고 있는 육군 제2102부대를 방문, 이 부대 군종 조용걸 신부(아우구스띠노)와 1박 2일을 같이 보내며 최전방 군종신부의 하루 일과의 이모저모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았다.
서울서 춘천을 거쳐 이 부대가 주둔한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상리까지는 급행버스로 만 5시간이 걸려 상리 조 신부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 마을은 주위의 험준한 산들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 속에 늦가을 저녁의 쌀쌀함을 넘어 한기마저 느끼게 했다. 반갑게 맞는 조 신부를 따라 숙소에 이르자 마침 오늘이 지난 8월 15일 발족한 양구지역 가톨릭 장교단 9월 월례회라면서 자기보다 장교님들을 만나 보는 게 취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오후 8시가 되자 월례회는 성원, 주모경에 이어 회의가 시작됐다. 안건은「일요일 미사버스 운행」.
총무 김용진 소령 보고에 따르면 8월 발족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어 그간 부대 참모진과 접촉 끝에 이번 주부터「미사버스」를 부대마다 순회시키기로 결정을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일요일 미사 참예에 불편을 겪던 이 지역 장병들은 양구성당 오전 11시 군인미사에 닿게 운행되는 군인버스 편을 이용케 된 것이다.
『우리가 신부님을 도와드릴 수 있다면 이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회장 이종순 소령(가브리엘)은 장교단을 발족시키고 보니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면서 우선 시작이 이쯤 결실을 본 것은 신부를 중심으로 이 같은 대화의 분위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장교단 발족을 자랑한다.
회의는 11시경이 되어서야 마쳤다. 부인들이 정성스레 차려 준 저녁에 조 신부가 특별히(?) 낸 정종 몇되를 반주로 비우는 동안 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는 어디에 내 놔도 자랑할 만한 것들이었다.
『신부님, 한 일 년 더 계셔야겠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은 기초를 닦느라 고생도 많으셨으니 이제 결실을 보고 가셔야죠』『일전에 부사단장을 뵈었더니 자기도 언젠가는 종교를 갖겠다고 하더군요. 신부님이 유의해서 권면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OP(관측소)에 자주 가 보시는지요. 혹 불편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조 신부의 직책은 2120부대 휴양소 인격 지도 담당. 이곳은 철책선 근무 병사들이 4박 5일 코스로 몸과 마음을 쉬어가는 이 부대가 전군에 자랑하는 복지시설의 하나다.
오전 8시 출근한 조 신부는 어제 들어온 휴양소 신자 카드를 점검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정신 훈화를 한다.
『여러분의 입소를 환영합니다. 앞으로 4일 간 이곳에서 푹 쉬어 가십시오.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을 위해 있는 가톨릭 군종신부입니다. 계시는동안 부대생활에서 느끼신 어려움이나 일신상의 문제로 저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언제나 찾아 주십시오』
오전을 이곳에서 조 신부 안내로 식당 오락실 등을 둘러 병사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텔레비도 보면서 지낸 후 부대 방문에 나섰다.
오늘 방문 부대는 격전지「펀치볼」을 옆으로 내려다 보는 해발 1650 m○○고지의 1대대 OP.
정오에 부대를 출발한「찝」차로 해발 1천m 이상 산기슭에 닦아 놓은 작전도로를 따라 숨 가쁘게 올라가는 도중 10여개의 크고 작은 초소마다 조 신부를 알아본 초병들이「당백」구호와 함께 경례를 한다. 운전병 말로는 1시간 거리인 대대 OP까지는 80여분이 걸렸다.
초소마다 멈춰『수고하십니다』면서 검게 그을은 초병들과 악수를 나누고 주머니마다 잔뜩 넣고 간 담배와 검을 전하다 보니 20여분이 초과된것이다. 『이 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군종신부가 된 데 보람을 느낍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그리울 지경이 이 산중에서 병사들이 생각할 수 있는 하느님은 순수한 모습 그대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이 길을 오를 땐 사단 작전처에서 미리 초소마다 군종신부 아무개가 지나간다고 연락을 했어도 꼬치꼬치 묻고 어떤 곳에선 신분증을 보고서야 통과시키곤 했는데 지금은 칼라만 보고도 수고하신다고 웃으며 반깁니다』
정상에 가까운 초소에 이르렀을 때 초병이 차를 멈춘다.
『누구십니까』
『군종신부 조용걸 대윕니다. 1대에 OP로 가는 길입니다』
병사는「군종신부」란 말이 낯 설은 듯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지나온 초소로 연락을 하는 모양이다.
『아! 군목신부 알았어』
『죄송합니다. 전 군종신부란 말을 처음 들어서… 가십시오』
OP에 도착하니 대대장은 철책선 순찰로 부재 중이고 작전 장교가 일행을 맞는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침 비상이어서 남은 병력이 얼마 안 됩니다만. 좋은 말씀 부탁합니다』
최전방 적진을 내려다보는 OP 방커 안 10여분간 짤막한 얘기를 통해 조 신부가 강조한 것은 장병들이 이곳에서 주야로 수고하는 이유였다.
『여러분이 있기에 여러분의 부모 형제는 안심하고 생활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 형제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벙커를 나오자 갓 임관된 듯한 소위 한 사람이 신부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강복을 청한다.
『며칠 전에 부임한 이 아우스띠노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오셔서 격려해 주십시오』
적진을 내려다보는 방커한 모퉁이에서 이 소위에게 고백성사까지 주고 하산을 서둘렀다.
상리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춘천행 급행 막차가 떠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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