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배달을 끝낸 영호는 신문지국을 나섰다. 겨울철에는 신문 배달이 끝나 집에 돌아갈 때에는 가로등이 켜진 뒤였는데 요즘은 서산 위에서 붉게 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집으로 간다.
-상진이는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상진이는 영호가 신문지국장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청호다방에다 구두닦이 장소를 얻어준 아이다.
영호는 그동안 상진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청호다방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 오늘 가보자!
영호는 청호다방 쪽으로 걸어갔다.
다방 입구에 들어선 영호는
『어허 벌써 갔나?』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었다. 다방 입구에는 상진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구두닦이 도구도 보이지 않고 깨끗이 청소까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호는 혹시나 하고 다방 안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상진이는 다방 안에도 없었다. 다방에서 나온 영호가 시립보건소 앞을 지나려고 할 때
『형!』
반갑게 부르는 소리에 영호는 고개를 돌렸다. 상진이었다. 영호는 반가왔다.
『잘 있었니?』
『응』
고개를 끄덕이는 상진이가 무척 명랑해 보였다.
『나 지금 청호다방에 들렀어 네가 있나 해서…』
『나 아버지 약 때문에 일찍 일을 끝냈어』
『너의 아버지 좀 낫니?』
『응 아주 좋아졌어』
하고 상진이는 웃었다.
『그래 다행이구나…』
영호는 상진이가 그전보다 명랑해 보이며 또 상진의 아버지 병환이 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두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상진이 아버지의 약은 수위아저씨가 언제나 약국에서 타가지고 상진이가 저녁 때에 들리면 주곤 했다.
그동안 상진이는 하루하루의 수입이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단골손님이 많아진 것이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저금도 했다.
『형 나 말야 저금도 해』
상진이는 저금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몹시 대견스러운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잘 했다』
영호는 흐뭇했다. 그러면서도 영호는 상진이가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생각했다.
『상진아 너 저금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배워야 할 게 아니냐』
영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뭘 배워?』
『공부를 해야 한단 말이다』
영호는 상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일 안 하고…』
상진이는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영호를 쳐다보았다.
『물론 일은 해야지 일하면서 공부를 한단 말야』
『어떻게?』
『밤에 공민학교에 다니면 되잖아』
『……』
상진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공민학교는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상진이는 역시 말이 없었다.
『사람은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로 배워야 해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빛이 나지 않는 거야 그리고 공부한다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넌 국민학교도 도중에서 그만두잖았어 그러니까 더욱 배워야 해』
영호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상진이는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형. 이제 공부해도 돼?』
하고 말했다.
『그럼 되지. 넌 아직도 어리단 말야. 낮에 일하고 밤에 집에 가기 전에 몇 시간만 공부하면 된단 말야』
『그럼 해볼까?』
상진이는 자신없이 말했다.
『해볼까가 아냐 해야 해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내년쯤에는 야간중학교도 선단 말야 네가 열심하기만 하면 공민학교를 나와서 또 야간중학교도 갈 수 있는 거야』
상진이는 중학교에도 갈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중학교도?』
『그렇지!』
상진이는 국민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공부하는 것은 자기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는 단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 그럼 나 아버지께 말해서 공민학교에 다니겠어』
상진의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빛나 보였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공부하겠다는 걸 반대하지 않을 거야 얼마나 훌륭한 일인데! 그런데 너 밤에 집에 가서는 뭘 했니?』
『아무것도 안 했어』
『그것 봐 사람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게 안 된 거야』
『형 공민학교 어디 있어』
『두 군데나 있어. 저 길성동에도 있고 또 해안동에도 있어』
『나 혼자가도 돼?』
『되지. 너 혼자 가기 싫으면 내가 함께 가 줄게』
『그럼 좋아 돈 많이 있어야 해?』
『입학금도 싸고 수업료도 거저나 다름없어』
영호와 상진이는 내일 저녁에 만나 공민학교로 가기로 약속했다. 영호는 저보다 어린 한 소년에게 밝은 빛을 안겨 주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영호와 상진이는 기찻길 건널목에서 내일 저녁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상진이는 영호와 헤어져 기찻길 옆길로 막 뛰어갔다.
영호는 얼굴에 밝은 웃음을 담고 뛰어가는 상진이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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