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는 신문 배달을 여느 때보다 빨리 끝냈다.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했다. 상진이를 데리고 해안동에 있는 공민학교로 가기 위해서였다.
영호가 청호다방 앞에 이르자
『형!』
하고 상진이가 다가왔다. 상진이는 말끔히 세수까지 하고 영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의 아버지 허락하셨어?』
영호가 웃으며 말했다.
『응 아버지도 좋다고 했고 누나도 아주 좋아했어!』
『그래 잘 됐다』
영호는 어제 상진이를 공민학교에 다니라고 권하기는 했으나 상진이네 집에서 반대를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걱정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누나까지도 찬성했다고 하니 기쁘기 한이 없다.
『자 가 보자!』
영호는 상진이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두 아이는 해안동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상진이는 영호의 손을 잡고 가면서 몇 해 전 아버지와 함께 갔던 국민학교 입학식 날의 일이 떠올랐다.
학교가 있는 해안동까지는 이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수업이 시작된 것이라고 영호는 생각했다.
영호네는 그 학교를 보통 공민학교라고 불러왔는데 간판은「망양학원」으로 되어 있었다. 망양은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뜻이다.
망양학원의 교사는 본래는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그것을 현관도 만들고 유리창도 만들어 공부하기에는 불편 없게 개조를 한 것이다.
상진이는 영호의 옆에서 망양학원이라는 간판과 영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기뻐했다.
『자 들어가 보자!』
하고 영호는 앞장을 서서 운동장에 들어섰다. 영호와 상진이는 직원실 같이 보이는 밖에서 서성거렸다. 그러자 들창을 열고 대학생 같이 보이는 청년이
『왜 왔니 볼일이 있으면 들어오너라』
친절하게 말했다.
영호는 용기를 내어 앞서서 현관에 들어섰다. 상진이도 뒤를 따랐다. 직원실에 들어서자
『왜 왔지?』
하며 청년은 두 아이의 앞에 섰다.
『이 애를 입학시키려고요』
영호는 머뭇거리다 겨우 이렇게 말했다.
『이 애를?』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은 좀 놀라는 듯이 말했다.
『네!』
『너 국민학교 나왔니?』
하고 다시 청년은 물었다.
『2학년 2학기까지 다녔어요』
역시 영호가 대답했다.
『그래 우리 학원은 말야 국민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중학교 교육을 가르치고 있어, 그런데 간혹 얘처럼 국민학교를 도중에서 그만둔 애들도 찾아오기 때문에 국민학교 공부를 따로 가르치고는 있어, 그런 애들은 모두 합해도 열두 명밖에 안 돼 자 여기 앉아!』
하고 청년은 의자를 가리켰다. 영호와 상진이는 의자에 앉았다. 청년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망양학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청년 열 명이 시작한 학원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며 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봉사를 하려고 하다 착안한 것이 이 학원인 것이다. 처음 시작은 학생 20명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1백 오십 명은 넘는다. 물론 교사들은 무보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열성적으로 가르쳤고 또 학원 운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학교 과정은 교사 두 사람이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가지고 한 교실에서 불편한 대로 가르치고 있다. 영호는 상진이에 대해서 더듬더듬 이야기를 했다. 상진이는 3학년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래 너희들 참착하구나!』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은 기뻐했다.
『자 입학 원서를 써 가지고 내일 다섯 시 전에 오너라. 공부는 다섯 시부터 시작하니 늦지 않도록. 열심히 다녀라』
친절하게 말하며 두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영호와 상진이는 꾸벅 절을 하고 현관을 나왔다. 바다가 가깝기 때문에 똑딱선이 통탕거리는 기관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상진이네 집은 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상진이는 학원에서 준 입학 원서를 돌돌 말아 가지고 한쪽 손에 소중한 듯이 들고 있다.
『입학 원서 너의 누나 보고 써 달라고 해』
『응!』
상진이는 웃음을 담은 얼굴로 영호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교과서에 대해선 학원에서 아무 말도 안 했지?』
영호는 생각난 듯이 말했다.
『응 아무 말도 안 했어』
영호는 무엇인가 생각했다.
『교과서는 말야 내가 동네에 가서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봐 가지고 있으면 내일 네가 학원에 가기 전에 갖다 줄게 사지는 말아라』
하고 영호가 말했다.
『형, 내일 저금 찾아 사면 돼』
상진이는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하면 되기는 하겠지만…내가 얻어 줄게』
영호는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 보면 삼 학년 교과서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필기장도 내가 줄게…』
두 아이는 철교가 보이는 곳에까지 이르렀다. 영호는 그 개천가에 상진이네 집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영화와 상진이는 철교 아래서 헤어져야 한다.
『형, 우리집 저거야!』
상진이는 철교 아래 조그마한 개천가를 가리켰다. 상진이네 집은 개천가 수양버들 옆에 있는 판잣집이었다.
『응, 찾기가 쉽구나 그럼 가 봐!』
『형, 잘 가!』
하고 상진이는 개천가를 막 뛰어갔다. 영호는 한동안 상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식, 기쁜 모양이구나!』
하며, 영호는 철로 옆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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