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어떻게 살아갈 방법이 없을까요-』『남편은 사형수로 수감돼 있고 재가한 시어머니 구박에 그나마 잠자리로 여겼던 천막집에서 쫓겨나 두 아들을 데리고 가난한 오빠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 70년 2월「중랑교 여인 살인사건」으로 입건 현재 사형수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종석(朴鐘錫ㆍ32) 씨 부인 김옥순(金玉順ㆍ27) 여인의 생존을 위한 애끓는 호소다.
남편 박씨는 삶에 쫓기다 살인까지 하게 돼 수감됐다가 죄를 통회하고 70년 10월 그 당시 교무과에 근무했던 고중렬(현ㆍ화양동성당 회장) 씨를 대부로 장흥선 신부 주례 아래 영세 입교, 새로운 인간으로 재생할 것을 다짐했다.
그 후 박씨는 유달리 독실한 신앙생활을 실천해 다른 수감인들의 모범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옥중에서도 사도직을 수행해 왔다. 규율이 엄격한 옥중생활이라 전도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그에게는 세수시간과 운동시간이 가장 사도직 수행을 위한 절호의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을 최대한 이용, 그는 영세를 권면한는 내용의 쪽지를 미리 준비했다가 교도관의 눈을 피해 전달하길 수십 차례. 이렇게 해서 입교시킨 동료가 8명이나 된다.
그는 가톨릭신학대학 김치동ㆍ박노헌(연구과 1년) 군과 의형제를 맺어 서신으로 영신 지도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외부 성직자들의 영신생활을 위해서도 기도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 7월 9일 명동에서 있었던 서품식을 위해서 그는 하루 12시간 동안의 기도와 묵상을 비롯 20회의 로사리오 기도를 바쳐 새로 탄생되는 사제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요즘 갑자기 사형 날짜를 아는 듯이 그동안 모아왔던 가톨릭시보와 경향잡지 등 각종 종교 서적들을 면회 오는 수녀들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간단한 내의와 이불 등 소지품들을 동료 수인들에게 배부하는 등 부인 김옥순 씨에게는 재가해 줄 것과 두 아들 상열(7살) 상돈(5살) 군은 양자로 보낼 것을 권유하면서 마지막 임종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편 시집에서 쫓겨난 김 여인은 교도소후원회(회장ㆍ김현) 서인주(50ㆍ수산나 화양동본당) 씨와 허선라 (공덕동 주임) 신부의 여형구 (구치소지도신부) 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데 지난 7월에는 그들의 도움을 얻어 생선 장사로도 나섰으나 경험이 없어 셋방살이도 얻지 못한 밑천까지 없애고 말았다.
막상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가려고 해도 폐결핵 3기에다가 몸이 시름시름 아파 힘을 쓸 수 없어 그것도 가지 못하고 두 아들과 함께 친정 오빠인 김기노 (30ㆍ마천동 148번지 4동 3반) 씨에게 와 있다. 그러나 김 씨도 무직인데 식구가 6식구나 되는 가난한 판잣집 삶이라 머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있지 못할 딱한 형편이다.
이들의 궁핍한 삶을 두터운 신앙을 갖고 친정 어머니처럼 돌봐 주고 있는 교도소후원회 서인주 씨는『김 여인 자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 궁리로 전전하고 있지만 단돈 백 원도 없어 제대로 진찰도 못한 채 시름시름 앓는 그녀가 이 상태에서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면서 박 씨의 권유에 따라 자식들만이라도 양자로 보내 순진한 어린아들들에게는 더 이상 가난의 아픔을 안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요즘 박 씨는 소지품은 모두 처분하고, 마지막 보속으로 의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기 눈을 제공하여, 가난했기 때문에 저질렀던 지난날의 죄를 다시금 속죄하고 여태껏 보살펴 주신 분들에게 보답함과 동시 부인과 아들들에게 못난 아비를 용서해 주길 기원하면서 임종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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