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진이와 헤어져 집으로 가던 영호는 우선 형일이네 집에 들러보고 싶었다. 영호가 대문 안에 들어서는 것을 본 형일은 대청에서 일어서며
『영호!』
하고 반갑게 뛰어갔다.
형일이가 뛰는 발소리에 먹이를 쪼아 먹던 비둘기들이 푸르륵 날아올랐다. 그러나 먼 곳으로는 가지 않고 영호네 방 앞에 내려 또 먹이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야 비둘기들이 컸구나!』
영호가 놀란 소리로 말했다.
『굉장히 컸지』
형일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영호와 형일은 말 없이 비둘기들이 마당 안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쪼아 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우리 방에 들어가자』
형일이가 영호의 손목을 잡으며 일어선다. 두 아이는 문간방으로 갔다.
『나 말야 지금 해안동에 있는 공민학교에 갔다오는 길야』
영호가 말했다.
『공민학교에는 왜?』
형일이가 의아스럽게 말했다.
영호는 상진이와의 관계와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래 너 참 제법이구나…』
하고 형일은 탄복했다.
『니네 집 국민학교 3학년 교과서 없어?』
영호가 형일이와 형철의 책꽂이에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그 애 줄려구?』
『응』
『글쎄…』
하고 형일이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우리 형철이에게 혹시 있을지도 몰라』
하고 형일은 책상 위에 올라서서 들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형철아!』
형일은 웃음 섞인 소리로 형철을 불렀다. 형철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돌 층층대에 앉아 있는 네댓 명의 아이들 앞에서 손짓 발짓 야단스럽다.
『형철아!』
형일은 다시 큰 소리로 동생을 불렀다. 그제서야
『왜』
형철은 저희 집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중대한 일이 생겼어 빨리 와!』
형일은 역시 웃음 섞인 소리로 외쳤다.
『형 중대한 일이 뭐야?』
형철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가 몹시 신나는지 얼른 뛰어올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
『빨리 오란 말야!』
형일은 다시 소리쳤다.
『그래』
하고 형철은 아이들에게 뭐라 하고 집 쪽으로 뛰어 올라왔다. 형일은 형철이가 집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책상 위에서 내려섰다.
『형 왜?』
형철은 대문 밖에서부터 소리치며 마당에 들어섰다.
『영호형 왔구나!』
형철은 씨익 웃었다.
『너 삼 학년 교과서 있어?』
형일이가 말했다.
『삼 학년…』
큰 일이나 생각하는 것처럼 형철은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뭐 그렇게 심각한 표정까지 할 건 없어』
하고 형일은 웃었다. 형철이도 따라 쾌활하게 웃었다.
『어찌하면 있을지도 몰라, 나 다락에가 찾아 볼게』
하고 형철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만 있자 그애 다른 것도 필요할 게 아니니?』
형일은 한동안 말 없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어떤 것?』
영호는 형일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되는 듯이 말했다.
『저…학교에 첨 가니까 필기장도 필요하고 또 연필 같은 것도 있어야 할 게 아냐』
『응… 그런 것 그야 필요하지』
『너 국민학교에서 쓰던 책가방 없어』
형일이가 말했다.
『우리 옆집 애에게 줬어』
『책가방은 내게 있어 아직도 새거야. 그리고 필기장도 연필도…』
영호는 기뻤다. 영호는 형일이네 집에 교과서가 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형일은 자기가 생각하지도 못한 책가방까지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형 교과서 있어!』
형철이가 다락에서 소리쳤다.
『그래 빨리 갖구 와!』
형일은 영호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자 있잖아 형 이걸 뭘 해?』
형철은 책의 먼지를 털면서 물었다. 영호는 상진이에 대해 말했다. 영호의 말을 끄덕이며 듣고 있던 형철은
『구두닦이 아이를 도와주는 거지?』
형철은 영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런 거야!』
영호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나 연필이랑 필기장도 있어』
형철은 교과서를 영호 앞에 놓고서는 자기 책상 서랍을 뒤지었다. 연필 세 자루와 지우개 하나 필기장 세 권을 또 영호 앞에 놓았다. 형철은 무슨 일에 있어서나 이같이 행동이 빨랐다.
『나도!』
하며 형일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서는 자기 책상 서랍을 뒤지었다. 형일은 필기장이랑 연필을 영호 앞에 놓으며
『형철아 아빠 방에 가서 낡은 신문 갖고 와!』
하고 말했다.
『형 신문지 뭘해?』
형철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걸 싸게 말야』
『형 책가방에 넣으면 되잖아』
『아 그렇지』
형일은 머리를 긁었다.
『형 머리가 잘 돌지 않는단 말야』
형철이가 한마디 했다.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영호는 책가방을 들고 밖에 나섰다. 세 아이는 저마다 흐뭇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영호는 상진이네 집으로 가려고 언덕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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