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토착화의 모델을 본 것은 1974년 강원도 삼척에 있는 조그마한 사직성당에서 였다. 비교적 넓은 제단에는 밥상모양의 제대와 마치 유학자들의 책꽂이를 연상케 하는 독서대가 있었다. 이 제대와 독서대는 모두 자개가 박힌 것으로서 라커칠이 되어있었다. 신자들의 시선을 제대 쪽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8쪽 병풍으로 제단을 장식했는데 그 병풍은 아래, 위로 나뉘어져 한쪽은 신구약성서의 장면들을 한국식으로 표현한 그림, 다른 한쪽은 서예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제일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전통적인 한국 민속화인 십장생을 그리스도교식으로 응용하여 모자이크로 만든 것으로서, 성당 앞마당을 내다보는 박공부분(중앙 문 윗벽)에 위치해 있었다. 이 그림은 성당을 지을 때 설계사에 의해 구상된 것이 아니라 교회 건물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몇 명의 사목위원들이 문 위의 넓은 벽면이 휑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우연히 구상되었다 한다. 사목위원들과 본당신자들이 상의한 끝에 십장생도로 그 빈 공간을 장식하기로 결정했으며, 본장의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여 모자이크조각을 자르고, 번호를 매기고, 풀로 붙이는 등 공동작업을 했는데도 4주간이나 걸렸다 한다.
영구 불변상징
십장생도의 10개 그림은 각기 영구불변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철 푸르른 소나무, 구름, 태양,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곧은 대나무, 흐르는 물, 영구불변의 바위, 노화를 방지하는 불로초, 뱀, 사슴으로 이루어져있다. 십장생도는 원래 작자불명의 민화였으나, 여러 세대에 걸쳐 나름대로 각색 전승되었는데, 요즘은 그 그림을 경복궁 왕좌 뒤에서 볼 수 있고, 또한 현대식으로 각색된 것은 국립박물관의 웅장한 무대막을 장식하고 있다. 요즘은 한국성탄 카드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한국적 상징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이고, 생명은 그리스도교 믿음의 핵심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 영구불변을 의미하는 전통적 그림은 교회 장식으로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직 본당신자들은 특별히 그 그림에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가미하기를 원했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영원한 생명」에 전통적인 그림인 이 십장생도를 접목 시키면서 신자들은 어떻게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새로운 상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초기 교회의 상징인 물고기를 생각했지만, 보통 신자들이 물고기의 상징적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으며, 또한 커다란 모자이크에 장식하기에는 물고기가 너무 작아 거부되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즉 에덴동산과 갈바리아 동산의 십자가를 연관시킨)는 그림에 이미 소나무가 있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신자들은 영원한 삶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예수의 상징으로 양을 선택했다. 양의 그림 선정에 있어서 신자들은 그리이스 정교의 전통으로부터 유래된 십자가와 함께 있는 양을 선택했다. 양과 목자는 모두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전체적인 효과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기 좀 어려웠던 것은 신자들이 최종적으로 양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사전례기도문에서 「천주의 어린양」이 자주 언급되어 한국가톨릭 신자들에게 「어린양」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또한 착한 목자 예수를 묘사하는 종교 카드가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양과 목자를 보기가 어렵고, 한국 사람들은 양고기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성서연구반에서 나는 토착화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하느님의 양」을 자주 예로 들었다. 우리가 사용하는「하느님의 양」이란 말은 단어 자체를 명확하게 번역했을 뿐이지, 원래의 의미를 전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올바른 성서적 의미를 전하기 위해「양」을 대치할 수 있는 단어, 즉 양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질문하곤 했다. 학생들은 「하느님의 소」 「하느님의 사슴」, 심지어 「하느님의 개」라고 까지 답했다. 이 질문은 학생들에게, 그동안 「하느님의 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현실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자연에서 하느님 발견
그 그림이 아직 사직성당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2가지 이유 때문에 이 토착화 시도를 좋아했다. 첫째는 토착화가 전문가 즉 건축가. 예술가. 신학자들의 산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훌륭한 그림이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 그림이 우리 자연환경에 하느님 창조의 경이로움에 대한 감수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자연을 통해 당신을 계시하셨으므로 우리는 자연을 통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만연된 자연의 훼손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거칠고, 잔인하며 폭력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자연의 상징을 되도록 많이 사용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자연을 통하여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깊이 느끼고, 미래세대에 대해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사직 본당신자들이 1974년도에 이것을 염두에 두고 십장생도를 생명과 연관시켰다면, 그들은 확실히 시대에 앞서 신앙을 깊이 있게 산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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