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이제 첫 여름에 접어들었다.
바다에서 깊은 안개가 매일 같이 밀려들던 것이 어제 같은데…
햇빛은 눈부시고 뜨겁기까지 하다. 그늘이 좋아질 때가 된 것 같다.
형일이네 늙은 은행나무의 푸른 잎들이 싱싱하기만 하고 형일이네 대청에서 바라보이는 수도 저수지산의 아카시아와 청학곶의 벚나무는 푸른 빛이 짙어만 간다.
자연이 이같이 달라져 가는 동안 형일네 비둘기들도 커 갔다. 얼핏 보아서는 큰 비둘기나 다름 없다.
형일은 어디엔가 날아갔다가 돌아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다.
형철이가 마당에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비둘기들은 푸룩 날아 자리를 옮겼다. 혈철은 형일의 옆에 앉으며
『형, 나 말야, 경수형네 갔었어.』
하고 말했다.
그러나 형일은 대답이 없다.
『형 왜 말 없어?』
『경수네엔 왜?』
형일은 형철을 보지 않는 채 말했다.
『경수형네 비둘기 얼마나 큰가 가 봤어』
『경수네 비둘기 좀 커진 것 같애?』
『뭐 우리 것 절반도 안 돼』
『그래…』
경수네 비둘기는 형일이네 것에 비하면 절반밖에는 안 되나 그래도 처음 가져올 때보다는 제법 컸다.
물론 형일이네가 비둘기를 기르는 데 자극을 받고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식구가 적은 경수네 집에서 두 마리의 비둘기는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경수 어머니는 경수가 비둘기를 정성껏 기르는 것을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형 뭘 생각해?』
형철은 형일이가 잘 말대꾸도 해주지 않는 것이 불만스럽다.
그래도 형일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무엇인가 생각한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형하고 말도 안 한다.』
하고 형철은 벌떡 일어섰다.
『아냐 아냐 내가 생각한 걸 말해 줄게』
형일은 웃음 섞인 소리로 말하며 형철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면 그렇지!』
형철은 깔깔대며 도로 앉았다.
『저 말야 나 비둘기를 날릴 계획을 세웠어』
형일은 밝은 소리로 말했다.
『비둘기를 날린다고…어떻게?』
형철은 놀란 소리를 지른다.
『응』
『응이 뭐야 어떻게 날리느냐고 묻는데…』
『넌 말해도 몰라』
『왜 몰라』
형철은 손으로 형일의 어깨를 밀친다.
『이건 전쟁할 때의 작전 계획이나 마찬가지야』
형일은 크게 나온다.
『어떻게 하는 건데?』
형철은 형일이가 계획했다는 작전 계획 같은 것을 알고 싶다. 그러나 형일은 말하지 않는다.
『형, 말 안 해?』
『작전 계획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건 극비에 속하는 거야』
『좋아 그럼 나 형과 안 놀아』
『그럼 말할게』
하고 형일은 또 아까처럼 형철의 손목을 잡는다. 형철은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앉는다. 『형, 말해봐-』
『그래…저 말야 저 수도 저수지산에 비둘기를 갖고 가서 말야』
형일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형 걸어가?』
하고 형철이가 묻는다.
『내말 다듣고 질문을 하란 말야』
『그래!』
형철은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비둘기를 날린단 말야 비둘기들이 먼 데서도 우리집을 찾아오느냐 못 오느냐를 실험하는 거야』
『야 신난다. 형 언제 해?』
『이번 일요일이 좋을 거야』
『형 버스 타고 가?』
『걸어가야지』
『그럼 비둘기는 어떻게 갖고 가?』
『큰 종이 상자에 넣거나 안고 가도 돼』
『그랬다가 비둘기가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해?』
형철은 의문도 많으나 걱정도 많다.『문제 없이 집을 찾아올 줄로 믿어』
『아빠가 반대하면 어떻게 해?』
『아빠가 찬성하실 거야』
『형 그러면 비둘기가 집에 오는 것을 누가 기다려?』
『그야 네가 해야지!』
『그건 네가 해야지』
『난!』
어림도 없다는 투다.
『왜 그게 싫어?』
『난 싫단 말야 난 비둘기를 날려 보내고 싶어』
『비둘기를 산꼭대기에서 날려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 비둘기가 용케 집을 찾아오는 것을 맞이하는 것은 더욱 재미있단 말야』
『좋아 그럼 나 집에서 비둘기들이 돌아오는 걸 기다릴게』
형철은 신이 났다.
『형 비둘기가 돌아오면 어떻게 해』
『흰 깃발을 흔들란 말야』
『그게 수도 저수지산에서 보여?』
『보이지 큰 깃발이니까!』
수도 저수지산은 형일이네 집에서 5리도 못 되는 지점에 있다.
『네가 흰 깃발을 흔든 걸 보고 우리는 집으로 버스를 타고 달려온단 말야』
『야 신난다. 형 내일 해』 형철은 당장에라도 하고 싶다. 『역시 일요일이 좋아』
『그럼 아직도 나흘이나 기다려야 한단 말야』
『그렇지-』
형철은 나흘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일은 좀 불만스러웠으나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형 나 갔다 올게』
하고 형철은 밖으로 튀어나갔다. 형일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형철이가 나가는 대문가를 바라본다.
물어보나마나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하러 가는 것을 형일은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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