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형일이네가 수도 저수지 산에서 비둘기를 날리기로 한 일요일이다.
그런데 형일이와 형철이가 아직 잠이 깨기 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쉽게 개일비 같지 않다.
형철은 잠을 깬 순간 양철챙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어찌하면 빗소리에 잠을 깼는지도 모른다.
형철은 벌떡 일어났다. 책상에 올라서서 들창을 열고 바깥을 내다본다.
『에-참…』
형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형철은 안타까왔다.
『형 비가 와!』
형철은 책상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그리고서는 자고 있는 형일의 어깨를 흔들었다.
『형 비가 온단 말야!』
큰소리를 질렀다.
『뭐, 비가?』
형일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라서서 들창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형철이도 따라 책상 위에 올라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형, 오늘 안 되는 거지?』
형철은 옆에 나란히 서서 말없이 하얀 빗줄기를 지켜보는 형일의 옆 얼굴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 주일로 연기해야겠는데…』
하며 책상에서 내려선다.
『에-참…』
형철이도 혀를 차며 책상에서 내려선다. 며칠 동안 부풀었던 마음이 비 때문에 일시에 가라앉아 버렸다. 비는 두 형제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나흘 동안이 길고 길었다. 형일이네 형제만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비둘기를 날리게 되어 있는 오늘을 한결같이 기다렸던 것이다.
『형 다음 일요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일이라도 비가 개면 되잖아』
형철은 다음 일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 하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일요일이라야 아이들이 많이 갈 수 있단 말야. 영호도 일요일이면 신문 배달이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갈 수 있다고 했어…』
하고 형일이가 말했다.
『민호는 다음 일요일엔 어딜 간다고 했단 말야』
형철이가 불평하듯이 말했다. 민호는 형철이와 함께 비둘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형철은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생각하는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리고 비둘기집을 말없이 바라본다.
형일은 동생의 모습이 하도 우스워 그만 깔깔대고 웃었다.
『형, 왜 그래?』
형철은 형일의 앞에 섰다.
『아무 것도아냐』
하고 형일은 씨익 웃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형철이가 아니다.
『형 뭐야?』
『뭐가 뭐니 아무 것도 아냐』
『그럼 왜 웃었어?』
『그저 웃음이 나왔어』
『형 나보고 웃은 거지』
하고 형철은 형일의 어깨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아까까…』
형일은 아픈 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일어났으면 빨리 세수하고 성당 갈 채비나 해라!』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비가 오기 때문에 오늘 중대한 행사를 못하게 됐단 말야』
형일이가 부엌 쪽으로 소리쳤다.
『오빠 중대한 행사가 뭐니?』
안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던 유미가 문을 열고 까불었다.
『넌 까불지 말고 가만 있어!』
유미가 깔깔대며 문을 닫았다.
『그래 중대한 행사는 또 뭐니?』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비둘기를 날리기로 했잖아』
『응…이제부터 장마가 지는 모양이구나…』
『엄마 장마가?』
형철이가 놀란 소리를 지른다.
『그래…』
『그럼 내일도 오고 또 다음 일요일에도 와?』
『그야 봐야 알지!』
형철은 또 비둘기집을 바라본다. 비둘기들은 밖에 나오지 못하고 비둘기집 속에서 구룩구룩 소리를 낸다.
『형철아 비둘기 모이 줘!』
형일이가 말했다.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얼마나 활동했을지 모를 형철이다.
『그래』
하고 형철은 방 바깥 벽에 걸려 있는 비옷을 걸치고 모이를 손에 들고 마당에 내려섰다.
『빨리 세수 해라. 주일학교 시간 늦겠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쉬는 것이 아니다.
직장일이 언제나 바삐 일요일에도 출근할 때가많다. 오늘은 어쩌다 쉬는 일요일인데 비가 내리는 것이다. 형철은 비둘기집 안에 모이를 넣고 아버지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너 아직도 잠옷 바람이냐』
아버지가 웃었다.
『아빠 그보다 비가 와서 중대한 행사를 못하게 됐단 말야』
형철이가 말했던그대로 말하며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렸다.
『중대한 행사라니…』
아버지가 즐겁게 웃었다.
그때 밖에서
『형철아 오늘해!』
어느 아이가 소리쳤다.
『누구니?』
하고 형철은 대문간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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