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9일 오후 3천여 청중이 자리를 메운 시민회관 넓은 무대 위에선 20인조 어린이 리듬악대가 막 동요「고향의 봄」연주를 끝내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초라한 악대, 게다가 리듬의 흐름이 투박스럽기조차 했지만 청중은 회관이 떠나갈 듯한 박수를 보냈고 어린이들은 이 박수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휘자의 몇 가지 손놀림에 따라 악기를 내려 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소-아지 소-아지 어-루 소아지』멜로디는 없고 신음에 가까운 목쉰 소리의 불협화음(不協和音) 속에 동요「송아지」가 이어지자 청중석에선 신음과도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고 노래가 끝난 후 아까보다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의 이손 저손에는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어린이들로 구성된「충주 성심농아학교」리듬악대가 시민회관을 울린 것이다.
이들은 이날 미 십자군 총재 빌리 J. 하기스 박사의 내한 강연회를 맞아 한국십자군연맹이 마련한 환영음악회에 출연, 서울 시민에 첫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들이 불구의 장애를 넘어 투박하지만 악기를 연주하고 신음에 가까운「송아지」나마 부를 수 있기까지의 피나는「가시밭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톨릭이 경영하는(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유일한 농아학교인 충주 성심농아학교(충북 충주시 야현동)에 리듬악대가 창설된 것은 7년 전인 65년, 음악을 통한 청력 훈련과 정서 감정을 높여 주기 위해 악기라곤 실로폰 한 개를 가지고 시작했다.
놋 대야론 심벌을 대신했고 깡통에 모래를 넣어 텐블린을 대신했다.
그러나 지난 71년 초 이곳을 방문한 전 청주교구장과 주교가 이 눈물겨운 정경을 보고 아코디온을 비롯 타악기(打樂器) 몇 점을 희사 악대 모습을 갖추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선천적 장애로 음에 대한 감각이 없는 농아들인지라 북이나 목금 등 두드리는 악기를 주면 무턱대고 힘껏 두드리기만 해 며칠 못가 찢어지고 부러지기 일쑤었고 그나마 며칠 쉬면 백지로 돌아가는 상태였다.
『며칠해 보니 할 것 같지를 않더군요.악기를 주기 전에 음계를 충분히 가르쳤지만 강약을 몰라 크게만 치고 피리는 오랫동안 호흡기관을 단련시키지 않은 탓인지 호흡 조절을 못해 냅다 불기만 했어요』
마치 소리내기 시험이라도 하는 듯했다고 악대들이 끌어온 교사 박성자(디냐) 양은 그때를 회상한다.
때문에 악대를 그만두라고 할 수 없는 수녀들은 귀를 막고 지내는 형편이었고 인근 주민들은『달밤에 체조한다』고 빈정대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지 못하는 농아들이「소리의 예술」인 음악을 한다는 것부터가 될 법한 일이냐고 그만두라는 충고를 들을 때마다 가라앉는 의욕에 책찍질하며 강행군 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성과는 나타났다.
뱃고동 소리 같던 피리 소리는 차차 멜로디로 변해 갔고 선생의 손과 입 모양에 따라 북은 강약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기쁨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방학 때만 되면 걱정이 떠나질 않았어요. 음의 개념이 없이 내 손짓에 따라 기억한 음계를 기계적으로 눌러 가는 형편인데 한 달 넘어 쉬고 나면 반 이상을 잊어 버리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방학이 끝나기 무섭게 연습을 재촉했고 그때문에「극성」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결국은그「극성」이 첫 무대에 서는 날 朴 교사는 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29일 충주 아카데미극장에서 첫 연주회를 열자 이 기막힌 악대의 연주를 들으려는 4천의 청중이 쇄도 충주시가 떠들썩하도록 성황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들이 기억해 연주할 수 있는 곡은 17곡이지만 발표할 수 있는 것은 10곡 내외.
이날 아코디온 멜로디온 실로폰 목금 철금 그리고 몇 가지 타악기로 구성된 이 농아 악대는 충주 아카데미극장 연주회 이후 6개월 만에 서울 시민회관을 울린 것이다. 악기를 가진 지 1년 반 만에 불안하나마 노래를 이어 가기까지 이들은 신체의 장애와 함께 불가능하리라던 그들 나름의 정신적 장애까지 극복했고 이것은 청중에게 더없는 감동을 주었지만 이들은 교만하지 않았다.
이날 연주 후 망가져 가는 실로폰을 시멘트 부대로 싸고 있던 차명주(12) 양에게 박성자 교사를 통해 소감을 물었다.『기뻐요 사람들은 우리를 불쌍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와 같은 어린이들이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 주었으면 합니다』충주시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지난 7월「성심농아학교 후원회」를 발족 이들 후원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은 회원 수가 적어 큰 힘이 못 되고 있지만 전국의 신자들이 조금씩만 관심을 갖는다면 성심 농아들은 결코 외롭지만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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