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철을 찾아온 아이는 용운이었다.
용운이는 형철의 말을 가장 잘 듣는 나이 어린 아이다. 용운이는 수도국 산에는 가지 않고 형철이와 함께 집에서 비둘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용운이는 파란 비닐 우산을 받히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형철이가 나가자
『형철아 비 와서 오늘은 안 하니? 』
우산을 접으며 처마 밑에 들어섰다.
『오늘은 비가 와서 안 돼』
형철은 비가 오는데도 열심히 찾아온 용운이가 착하게만 생각되었다. 형철은 용운이를 그대로 돌려보내기가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용운아 오후에 꼭 와라, 우린 이제 성당에 가야 한다. 알았지? 』
형철은 용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말했다. 용운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비 안 오면 좋은데…』
용운이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그때
『작은오빠 밥 먹어?』
유미가 소리쳤다.
『용운아 오후에 꼭 와라! 』
『응』
용운이는 우산을 펴며 처마 밑에서 나갔다. 형철은 빗속을 걸아가는 용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오후에 꼭 와라! 』
하고 소리쳤다.
『그래』
용운이는 뒤돌아보며 대답하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형철은 콧노래를 부르며 방에 들어가 밥상 앞에 앉았다. 얼른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집었다.
『아빠 작은오빠 성호도 긋지 않고 밥 먹어』
유미가 호들갑스럽게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며 고자질했다.
『성호도 긋지 않고…』
아버지가 웃음 섞인 소리로 말하자
『엄마 큰일 날 뻔했어』
형철은 놀란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 옆으로 갔다.
『큰일이 뭔데? 』
어머니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오늘 내 동무가 영세한단 말야』
『누군데? 』
『경수형 옆집 호길이 말야』
『그래서? 』
어머니는 형철이가 자기의 옆에 찰싹 붙어서 말을 꺼내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다.
『축하를 해줘야잖아』
형철은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축하한다 하고 말하면 된단 말야』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형일이가 말했다.
『형, 그게 아니란 말야』
『그럼 어떻게 하는 거니? 』
『최소한도로 성가집과 상본은 기념으로 줘야 한단 말야』
『그래 결국 돈을 달라는 거지』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야, 아빠가 역시 최고다! 』
형철은 기쁜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의 뒤에서 어깨에 덮치었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결국 아버지가 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오늘은 성심강림축일이다.
형철은 호길이가 오늘 영세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둘기를 오늘 날리기로 한 그 후부터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호길의 영세며 또는 성심강림축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비는 계속 내렸다.
빗속을 형일이 형철이 유미가 나란히 성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파출소 앞을 지날 때,
『형, 오늘 비만 오지 않으면 참 신나는데? 』
형철이가 불쑥 말했다.
『누가 아니래』
『형, 만약 말야 오후에 비가 안 오면 어떻게 해? 』
형철은 역시 비둘기를 날리는 데 대해 미련을 갖고 있다.
『비가 내리는 품이 그치지 않겠어』
형일이가 말했다.
『만약에 말야』
『그래도 오늘은 안 돼』
『왜? 』
『오후에 영세할 때 나는 성당에 또 가야 한단 말야』
『왜? 』
『내 친구도 영세한단 말야』
『누가? 』
『넌 말해도 몰라 우리 동네 아이가 아냐 우리 한 반 애야』
『그런데 왜 이때까지 말 안 했어? 』
『그럼 일일이 네게 보고를 해야 해』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
형철은 말문이 막혔다. 한참 후에
『그럼 왜 아까 아빠가 내게 돈 주실 때 아무 말도 안 했어? 』
하고 말했다.
『나는 말 안 해도 다 되게 돼 있어』
형일은 껄껄대며 말했다.
『어떻게? 』
『난 말야 일 주일 전 기념품을 준비했는걸…』
『돈 어디서? 』
『돈이 꼭 필요해? 』
『그럼 돈이 있어야지』
『돈 저금통에서 꺼냈단 말야 그래서 묵주와 상본을 샀어』
『정말? 』
형철은 놀란 소리로 물었다.
『응』
『엄마 몰래 했지? 』
『응』
『그럼 고해성사 봐야 해 형! 』
『왜? 』
형일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 몰래 했잖아』
『그럼 그건 엄마 돈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가 저금한 내 저금통에서 꺼냈단 말야 그러니까 죄 될 건 없는 거야』
이렇게 되고 보니 형철은 말할 것이 없다 세 아이는 요셉 성인상 앞에서 각각 헤어졌다. 서로 주일학교 교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벌써 묵주까지 샀다고… 좋아 나도 묵주를 사자
하고 형철은 발길을 돌려 성당 매점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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