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아홉 시 반의 당구(撞球)」에 나타난 가톨릭 신앙-20세기 독일 현대 문학은 대저 카프카가 마지막 각혈을 하기 시작한 1920년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는 50년간의 문학사는 1945년 2차대전을 분수령(分水嶺)으로 해서 그 이전을 전전(戰前)문학기 그리고 그 이후를 전후(戰後)문학으로 나눈다.
전전문학의 대표적 가톨릭 작가로는 베르네베르겐 그릔을 들 수 있고 전후의 대표적 작가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인리히 뵐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전쟁과 물질문명에 대한 고발문학이라 하지만 이 고발문학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가톨릭적 신앙과 휴메니티인 것이다. 그의 모든 작품들 속에서는 수도원, 성당, 미사, 신자, 천국, 은총, 어린 양들이 등장치 않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아홉 시 반의 당구」에서도 전술한 핵심은 물론 종교적 제대상이 문장의 마디마디의 사잇점 및 교차점을 연결하고 접합시켜 준다.「무르케 박사의 침묵 수집」이후 발표된「아홉 시 반의 당구」에서는 뵐의 고향인 가톨릭의 도시「쾰른」에 거주했던 어떤 건축업자가 정의 50년 역사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바로 이 작품은 최근 50년 간의 독일 현대사를 반영해 주는 역작인 것이다. 페멜가의 할아버지에 의해 설계되고 건축된 성 안톤 수도원은 전쟁이 나자 공병장교로 군에 근무하게 된 아버지 로베르트에 의해 폭파된다. 로베르트는 가톨릭 문화재를 무력한 인간들의 생명보다 더 아끼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그런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폐허와 잿더미로 변한 성 안톤 수도원은 로베르트의 아들에 의해 복구되었으니 한 세대에 의해 건축되고 다음 세대에 의해 파괴되고 그리고 또 다음 세대에 의해 복구되는 독일적인 변증법의 과정은 물론 지난 반 세기 동안 가톨릭 전통을 끈기 있게 이어나가는 서독 시민사회의 강인한 신앙사인 것이다. 뵐은 여기서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도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파우스트적인 독일 정신을 강조했음은 물론 이 독일 정신을 밑받침해 주는 가톨릭적인 부활정신을 확대 부각시켰다. 이 작품에서도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모두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삼대의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인공은 종전되기 직전에 가톨릭 문학의 유산인 성 안톤 수도원을 폭파한 아버지 로베르트인 것이다. 수도원이 폭파되고 종전이 된 후에도 불안한 양심을 가눌 길이 없어 매일 아침 아홉 시 반에 호텔방에서 양처럼 온순하고 신앙심이 강한 소년들과 함께 당구를 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이것은 과거 자기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불안한 참회인 것이다. 그러나 뵐은 로베르트를 절망시키지 않는다. 로베르트는 당구로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방인적인 생활 속에서도 슈렐라라고 부르는 죽마고우와의 재회를 학수고대한다. 일곱 살 때에 로베르트는 슈레라와 함께 어떤 반(反)기독교도에 대해 미수로 끝났지만 여하튼 암살계획을 꾸몄던 일이 있었다. 여기서는 로베르트의 가톨릭을 위한 투쟁정신이 언젠가는 부활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무튼 그 후 슈렐라와 다시 만남으로써 로베르트의 불안의식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고 장차 소용없을 아홉 시 반의 당구놀이와는 결별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는 양처럼 온순하고 경건한 에레베타 소년을 양자로 삼는다. 과거에 불안의식 속에서 계속되었던 당구놀이는 불안한 위기의 20세기를 상징하는 것이고 양처럼 온순하고 경건한 소년들과의 타협은 산상의 (山上) 의 설교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로베르트가 에레베타 소년을 양자로 삼는다는 것은 과거 전쟁으로 인해 상실되었던 양심과 신앙을 되찾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고도로 성장하고 팽창될 대로 팽창된 위기의 핵시대에 직면해서 우리 현대인은 신이 준 아담과 이브의 원모습을 정형수술하기 시작했고 남녀의 양성조차 구별할 수 없는 모습으로 인간 아닌 동물, 동물 아닌 인간으로 변신되어 버렸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양심은 벌레가 파 먹은 사과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이와 같은 무질서한 물질문명의 횡포 속에서 희생 당하고 있는 현대인에게「아홉 시 반의 당구」라는 20세기의 성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조화된 가톨릭적 신앙을 영접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뵐은 이와 같이 신앙의 영접을 재촉함에 있어 오직 자기 직업의 도구인 경건하고 단순한 언어만을 통해서 가톨릭 정신 및 신앙을 끊임없이 명시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비판과 명시에는 언제나 20세기의 난해성을 해결해 주는 참된 가톨릭의 원칙에 입각한 가톨릭적 휴매니티가 뚜렷하게 성체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