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집으로 가는 형일이가 언덕에 올라섰을 때
『형일아!』
하고 뒤에서 누가 불렀다.
형일은 비닐 우산을 뒤로 제끼면서 돌아섰다. 형일을 부른 아이는 영호였다.
『어디 갔다 오니?』
형일은 언덕 아래를 보고 소리쳤다.
영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언덕을 향해 뛰어왔다. 노랑 비닐 우산이 마구 펄럭거린다.
『너 어디 갔다 오니?』
형일이가 기다리는 곳에 가까이 오자 영호는 숨찬 소리로 말했다.
『성당 갔다 오는 거야. 넌 어디 갔다 오는 거니?』
『나 어디 갔다 오는가 맞춰 봐』
영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와 섰다.
『너 좋은 일 있는 모양이구나?』
형일이가 말했다.
『응』
영호의 얼굴빛이 밝다.
『그럼 말해 봐!』
형일이도 영호가 여느 때보다 명랑해 보이는 것이 기쁘다.
『우리집에 가 내가 말해 줄게』
하고 영호가 말했다.
『그래 갈께 오늘은 이제 별로 할 일이 없는 걸!』
형일이와 영호는 형일이네 집 앞에 이르렀다.
『나. 엄마에게 너희집 간다고 말하고 나올게 기다려. 』
하고 형일은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영호는 우산을 빙빙 돌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대문 소리가 삐익 나자.
『엄마에게 말했어』
하며 형일이가 영호네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또 언덕에 올라섰다.
『영호야 그 애 이름이 뭐더라?』
형일이가 말했다.
『누구?』
『있잖아 그 구두닦이 한다는 애 말야』
『응. 상진이』
『그래 그 애 학교에 잘 다녀?』
『응. 며칠 전에도 봤는데 학교가 재미있대』
형일은 영호 편에 학용품을 보내 준 후 가끔 상진이 생각을 했다. 한 번도 만나 본 일은 없는 아이지만…
형일은 상진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기에 어쩐지 기뻤다.
이윽고 두 아이는 영호네 집에 이르렀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 너희 집에 왔으니 좋은 일 말해 봐!』
하고 형일이가 말했다.
『그래 할게』
하고 영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이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나간 다음 신문지국에서 수금원으로 있는 고등학교 학생이 영호네 집을 찾아왔었다.
『지국장 아저씨가 널 오라구 했어』
『지국장 아저씨가?』
영호는 뜻 밖의 일이어서 놀란 소리를 질렀다.
『형. 무슨 일이 있어?』
하고 다시 말했다.
『글쎄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어. 지국장 아저씨의 태도로 보아 나쁜 일 같지는…』
수금원 학생은 말끝을 맺지 않았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지국장 아저씨가 오라고 하면 가야 할 영호이다.
영호는 우산을 들고 바깥에 나섰다.
두 아이는 여중 옆에서 버스에 올랐다. 가는 도중 영호는 불안했다. 수금원 학생이 나쁜 일 같지는 않다고는 했지만 영호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에 지국에 나오라고 사람까지 보낸 일은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지국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오는데 수고했다. 』
지국장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영호 이리 앉아라!』
지국장 아저씨는 눈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영호는 의자에 앉았다.
『아저씨 저 가도 돼죠?』
하고 수금원 학생이 말했다.
『그래. 수고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인사를 하며 수금원 학생은 유리문을 소리내며 바깥에 나섰다.
『영호야 너의 어머니 장사 잘 되느냐?』
지국장 아저씨가 상냥하게 물었다.
『마찬가지예요』
영호는 짧은 대답을 하는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래』
하고 아저씨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내가 너의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해 주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다행히 너의 아버지 친구가 맡아 주어서 너는 무난히 중학교에 들어갔어. 그래서 내 계획은 틀어졌지. 』
하고 지국장 아저씨는 유쾌하게 웃었다. 영호는 공연히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가게도 없이 시장 구석이 아니면 또 행상을 한다기에 조그마한 가게라도 얻어 드려 모자가 조금이라도 잘 살 수 있게 도우려고 생각했어. 그러던 차에 백학동 쪽에 있는 집터가 팔렸다. 그게 그저께 일이다. 그러니까 내일이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오너라. 알았지?』
하고 지국장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영호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뭐라고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아저씨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
『자. 이제 집에 가도 돼 나는 이제 모임에 가야 돼』
지국장 아저씨가 일어섰다.
신문지국을 나온 영호는 우산을 사무실에 두고 나온 것을 깨달았다. 다시 되돌아 문 앞에 서자 지국장 아저씨가 영호의 우산까지 들고 나왔다.
영호는 우산을 받아가지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도 기뻐했다. 어머니는 손등으로 눈물을 자꾸만 닦았다.
영호의 이야기를 듣는 형일이도 가슴이 벅찼다. 형일이도 기뻤다.
『그래 참 잘 됐구나』
형일은 영호의 손을 잡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네가 지국에서 일도 열심히 하고 또 착하니까 그렇게 된 거야. 』
형일이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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