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물질적 풍요 속에 태평성세를 구가했던 19세기 후엽의 영국 국민들은 신앙상으로 혼미상태에 있었다. 진화론의 여파로 신앙에 대한 회의가 과격한 사상이 소용돌이 치는 사회문제와 얽히어 있었고「옥스포드」나「케임브리지」대학의 학도들은 이런 물질만능의 시대 사조의 물결 속에 기독교 신앙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학교 교육은 기독교 신앙을 떠나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기숙사 제도의 퍼브릭스들이나 대학 건물 중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교회당은 학도들의 마음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생활과 밀착된 신앙의 분위기 속에 교육을 받아온 학도들은 신앙에 회의를 품고 있다 해도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기까지는 착잡한 사색의 경로를 거쳐야만 한다. 이 소심한 인테리들의 현실에서 유리된 회의 사조를 그 시에 반영시키고 있는 시인 매슈우아놀드(1822~1888)는 명문 럭비 퍼브릭 스쿨의 교장이 던 토마스 아놀드 박사 슬하에서 1822년 탄생했다. 성실 근면한 아놀드는 일찌기 천재적 시재를 나타내 럭비 재학시에「로마의 알레릭」으로 럭비교 제정의 시인상을 받았다. 옥스포드의 베이올칼레지 재학시인 21세 때 명시「크롬웰」로 가장 영예로운 뉴우디게이트상을 탔다. 1844년 대학 졸업을 전후해서 아놀드는 그의 시인적 명성이 달려 있는 시를 많이 썼다. 아놀드는 신앙상 보수적인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전형적 구신앙의 정신적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영국 중학교 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그 부친에게서 그가 물려 받은 종교적으로 돈독한 신앙심은 언제나 그의 행동에 일정한 궤도를 제공했다. 1859년 촤알레스 다아윈의「종의 기원」이 일으킨 과학 사조의 세례를 받은 기독교계의 동요는 비록 그를 회의의 세계로 몰아 넣었다 할지라도 그의 신앙상 기본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놀드의 詩가 비록 재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를 반영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라이오넬트릴링 교수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가 속하고 있었던 지식계급 중의 소수 의견을 가리키고 있는 한에 있어서 사실인 것이다. G. K. 체스터튼도 말했듯이 로버트 브라우닝이 지적 민주주의자인 데 비해 아놀드는 지적귀족주의자인 것이다. 1869년 그는 자기 모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제가 쓴 시는 대충 최근 25년 간의 정신계의 주요 운동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 사조의 움직임의 본체를 깨닫고 그것을 반영한 문학 작품에 흥미를 갖게 됨에 따라 제 시도 아마 햇빛을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공평하게 말해서 저는 시적 정서를 테니슨만큼 지니고 있지 못하며 브라우닝과 비견할 만한 지적 정력과 윤택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의 누구보다도 아마 저는 이 두 가지의 요소를 융합해서 더 많이 지니고 있고 이 융합된 것을 근대 사조의 주류에 그들보다 더 꾸준히 적응해 왔으므로 그들이 일찌기 그 전성시대를 가졌듯이 앞으로는 십중팔구 저의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1869년이라면 아놀드는 근 20년 간에 걸친 성실한 교육자로서의 위치와 10년 간에 걸친 옥스포드대학의 시학 교수로서의 임무를 끝마친 후다. 그의 사회적 명망을 토대로 아놀드는 지나친 시인적 자부를 갖고 있지 않았었나 느껴진다. 사실 J. D. 점프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전시대의 낭만과 시인들의 지나친 정열과 기대, 이상주의에 대한 반항을 나타내는 19세기 중엽의 문학 사조의 일부를 아놀드의 詩가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근대 사조의 주류」를 그가 충실히 추구하고 있다고 그 자신이 자부할 근거는 희박하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가 그의 시를 객관적으로 따져 볼 때 지나칠 정도로 소주관에 흐른 경향이 많다. 그는 성실하게 재래의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전형적으로 소심한 소시민이다.
그의 생활은 대중의 거센 생활의 물결에서 유이된 영역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가「근대 사조」라 착각한 것은 사실은 그가 속하는 대학출신 인테리 중 그 일부층의 사념의 세계이었다. 그는 시의 영감을 시인에게 베풀어 주는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시로 읊었고 인간이 이 세상에 생을 누리는 한 성실하고 근면하게 노력하는 것. 이 현실적 영국 국민들의 생활 신조를 아놀드는 집요하게 그 체험을 토대로 시로 표현하고자 했다. 영생을 믿고도 즉 노력의 신념을 실천한 아놀드의 생활 태도는 그 시에 어김없이 반영되고 있다. 아놀드의 시의 정수는 그 비가조에 있다는 것은 이미 E. K. 브라운 교수가 지적한 바다. 10여편을 헤아릴 수 있는 그의 대표적 비가가 극도로 애조를 띠우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점은 고답적 견지에서가 아니고 평범하게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한 줄기 만족감을 신앙심이 두터운 자기 내부에 찾고자 근면하게 노력한 마음의 흔적을 그 시가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의 개인의 노력을 전제해서만 신에게 의탁할 자격이 있으며 운명을 감수하고 살고 있는 한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신의 진리를 믿으며 다른 생물처럼 자연스럽게 죽어 간다는 견지. 이 인생관은 평범하지만 내향적 시인 아놀드가 그 시에서 열렬히 표현하고자 희구한 바였고 노력하는 곳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삼매경을 그 시는 독자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시는 인생의 비평」이란 아놀드의 특론은 동시에 그 자신의 경도하고 근면했던 생의 복적을 통해 어김없이 입증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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