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대구에서 백여리 거리에 있다. 요즘처럼 교통 좋은 시절에 그거야 지척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님 산소 벌초 때와 설ㆍ추석명절에나 한 번씩 다녀올 뿐 고향에 자주가지 못한다. 마이카 시대에 중고승용차 한대 갖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시외버스가 서지 않는 고향마을을 찾는다는 것이 일상의 바쁜 굴레와 겹쳐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님께서、할머니 제사가 드는데 마침 방학이니 가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어、호우와 태풍에 피해나 입지 않았는지 문안도 할 겸 고향엘 다녀왔다.
큰집에서、9순을 바라보시는 백모님과 벌써 머리가 하얗게 센、후 내년에 회갑을 맞이하는 종형께 인사를 드리면서 세월이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백모님과 종형은 두 분 다 시원해 보이는 삼베적삼을 입고 계셨다. 요즘은 이 고장엔 삼농사를 안 짓는다는데、어디서 저렇게 고운 삼베가 났을까 싶다.
안부를 여쭈웠다. 호우와 태풍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노라는 대답이다. 몇 년 전에 산사태로 여러 사람이 죽은 참변이 있긴 하지만 이 동네는 내가 어릴 때부터 수해를 모르는 마을이었다. 논농사 밭농사 모두 작황이 좋다고 종형이 덧붙이 신다 .
어둡기 전에 아버님 산소에 다녀올 요량으로、어머님께서 마련해 주신 소주병과 안주봉지를 들고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는 잡초와 가시덤불이 무성하여 연방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이 오솔길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함께 소 먹이러 다이던 길인데 이렇게 풀숲이 짙어 있었다.
아버님 산소의 봉분 곁에 원추리 한 포기가 자라 있었는데、노란 꽃송이 하나를 피워 달고 있었고、작은 봉오리 여럿이 차례로 꽃으로 터져 필 차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봉분 둘레에 난 잡초들을 대강 뽑아 치우면서도 이 원추리는 뽑지 않았다. 그것이、자식들 키우시느라 타고 찌들었던 아버님의 얼굴을 대하는 듯 유별나게 정다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소주잔을 들고 잔디에 앉았다. 뒤로는 짙은 수풀이 고요에 겨워 있고、앞으로는 고향마을과 논밭이 조용히 엎디어 있다.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난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이제 아버님이 시신으로 돌아와 이렇게 뒷산 기슭에 누워 계실 뿐、어릴 적의 가슴 아픈 가난과 고통의 기억만 꽉 찬 고향이지만、내 나서 자란 고향이 시골이라는 것은 사랑처럼 나를 감미로움에 젖게 하지 않았던가.
『얘、넌 고향이 어디지?』
어느 날 수업시간에、꼭 계집아이처럼 흰 피부와 큰 눈을 가진 그 녀석에게 갑자기 수업내용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고향얘길 물었었지. 수업 중에 문득 아버님 생각이 났고、지금은 고향의 산 수풀 사이에 누워 적적한 솔바람 소리나 듣고 계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기 때문에.
『제 고향요? 제 교향은요 동산병원 산부인과요』
아이들은 폭소가 유쾌하게 터져 나왔다. 얼굴이 달아 오른 것은 그녀석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다. 나는 왜 모든 사람의 고향이 다 시골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맞은편엔 두무산이 높고도 우람한 자세로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었다. 머리두짜(頭)、없음무짜(無)라서 이 산 근처에선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도 했고 꼭대기가 늘 안개에 덮혀있기 때문에 안개무짜(霧) 두무산이라고도 했다.
그 두무산과 내가 앉아있는 뒷산 사이에 별로 넓지 않은 들판이 펼쳐져있고、그 들판의 가운데를 작은 강줄기가 뱀처럼 몸을 구부리고 흘러갔다. 여름이면 저 강물에서 진종일 미역을 감았지. 계집아이들은 어두운 밤에만 몇 명씩 무더기를 지워 몰래 나가서 강물에 몸을 식혔는데、개구장이들은 어둠 속에서 박꽃처럼 희게 피어 있는 계집아이들의 알몸을 훔쳐보기도 했었지.
동네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살던 낡은 초가집은 새마을운동 덕분에 슬레트로 갈아 이었었는데、몇 년 전의 산사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그 자리엔 넓은 새 길이 나 있었다. 우리 집 뒤 안에는 늙은 노간주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그 아래에는 「참 새미」라고 부르던、유난히 물이 차가운 샘이 하나 있었는데、여름이면 여기서 길은 시원한 물에 보리밥덩이를 말아서 고추장풋고추로 점심을 먹었었지.
나는 소주 한 병을 다비우고、어둡사리가 골짜기를 메울 때에야 산을 내려왔다.
저녁엔 마당에다 대자리를 깔고 앉았다. 서울에 사는 조카가 사 왔다는 중국산 수입품이라는데、옛날 멍석을 깔고 앉던 정다움은 없어도 시원해서 감촉이 좋았다. 소리도 없이 모기가 다리를 뜯었다.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별은 언제 보아도 곱고 신기하다. 저것이 처녀자리、저것은 큰곰이지. 별은 하늘의 꽃이라고 노래한 그 시인이야말로 별과 꽃의 참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지 싶다.
종형수가 부엌에서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동안 종형과 나는 냉장고에 수박을 꺼내어다 먹었다. 옛날엔 우리 집의 「참 새미」가 냉장고의 구실을 했었지.
『시원하지? 내가 냉동실에다 넣어 놨었거던. 하하하』
종형은 수박을 먹으며 어둠속에서 가볍게 웃었다.
수박은 마치 제과점의 빙설처럼 달고 시원했다.
어둠에 묶여있는 감나무가지를 흔들면서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곧 도래밭골 능선위로 하현달이 돋겠지. 기름처럼 미끄러운 달빛을 산과 들판、마을과 강에 골고루 뿌리면서 달이 돋으면、나는 혼자서 가만히 강변으로 나가야지. 젊은 날、이룰 수 없는 꿈을 물결에 띄워 보내던 강가로 나가、그때처럼 그렇게 하염없이 걸어보아야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는다고 했던가. 오늘밤 나는、은어비늘처럼 반짝이는 강물로 도회의 먼지를 씻어내고、내 고향의 가슴처럼 추억으로 채워 가야지.
뒷산 숲속에서 선잠 깬 산새가 운다. 새의 울음과 한두 마리 어둠을 가르는 반디 빛에 내 고향마을은 숨결도 모르게 잠들어가고 있다.
가난과 고통의 기억만 꽉 찬 고향이지만 내 나서 자란 고향이 시골이라는 것은 사랑처럼 나를 감미로움에 젖게 하지 않았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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