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일제 강점기속의 교회수난이 해방과 함께 종식되기보다는 무신론공산 정권의 수림으로 「수난의 교회」「목자 없는 교회」「지하 교회」또는「잠복교회」로 이어졌다. 분단초기에 북한교회는 건물과 토지를 강제로 압수당하였고 교우들은 직장이나 관공서에서 차별대우를 감수하면서 사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948년 9월에 북한에 정군이 수립되면서 교회 탄압이 양성화되었다. 1949년 5월 7일에 함흥교구와 덕원면속구의 사우어 대수도원장 체포되고 덕원도 수원과 신학교는 몰수당하였고 일주일 후에는 평양교구의 흥용호 주교가 피납되었다.
이후로 북한에서는 종교말살정책으로 성직자들이 체포 또는 피랍되어 「목자없는 교회」로 교회행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교우들은 공산정권을 붕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반공비밀결사에 입단하여 공산정권에 저항하였고 비밀리에 기도하며 천주교 신앙을 간직하였다.
북한 천주교는 이러한「지하교회」또는「잠복교회」로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1987년에 이르러 북한당국의 의도가 어떠하든지 북한교회는 지하교회에서 벗어나고 있다. 1988년 6월30일에 8개월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8백여 명으로 구성된「조선천주교인협회」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북한 천주교인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구로서 교회의 발전과 권익옹호、신자 공동체의 유대강화、세계 가톨릭교회와의 연대를 위해 조직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협회 결정에 대해서 북한의 대외 선전용으로 비판하는 시각이 있지만、신앙활동의 공개화와 교황청에 대한 개방과 대화의 일환으로 간주될 수 있다. 1987년 6월에 평양에서 개최된 비동맹회에 장익 신부님께서 교황청 대표단의 일원으로 초청되었고、1988년 3월말에 북한 대표단으로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2명의 신자는 성주간과 부활 축일의 예절에 참석하였다. 1988년 9월말에 평양에는 신자들이 헌금(총 건축비 30만원 중의 20만원)을 갹출하여 1년 동안의 건축 작업을 거쳐 장충동 성당을 준공하여 80여명의 평양 신자들이 주일마다 모여 기도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밀집하여 있는 도시에 공소나 성당의 건축을 계획 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을 방문한 성직자들의 체험담에 의하면、북한교회는 개인숭배 및 주체사상과 하느님공경 및 천주교 교리를 조화시키고 있고 국가기입이 배제되지 않는 국교회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상당 내부의 모습과 함께 1989년 1월에 「조선천주교인협회」의 회장이 발표한 담화문이다、김수환 추기경님을 정치지도자나 재야인사와 함께 초청하고、4월에 성직지망자가 포함된 북한교회의 대표단이 중국의 애국교회를 방문하여 천주교 제도를 문의한 사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북한 교회에 대해서 남한교회는 1984년에 한국 천주교 2백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북한 선교부」의 설립과 함께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84년 7월에 「북한 선교부」는 1983년 3월에 가족 방문으로 북한을 다녀온 미국 교포사목의 고마태오 신부님을 파리 주재 북한선교 해외활동임원으로 임명하여 북한교회의 재흥을 시도하였다.
1985년 9월에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도착한 지학순 주교님께서 북한에서 40년 만에 공식 미사를 집전하였다. 1988년에 교황청 특사로서 장의철 신부님께서 정의철 신부님을 대동하고 신축된 장충동 성당을 방문하여 처음으로 북한 교우들 앞에서 미사성제를 집전하고 성물 성서전례서 성가집을 전달하고 「조선천주교인협회」의 임원들을 만났다.
1989년 2월에 세분의 미국 교포사목의 신부님들께서 관광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장중동 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성체를 봉헌하고 북한 교회의 대표들과 신교 자유、김일성 숭배사상과 신앙생활의 관계에 대한 담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6월 6일에 문규현 신부님께서 정의구현사제단의 통일염원미사를 북한에서 같은 시간에 봉헌하기 위해 방북하였다.
방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한 교회의 재흥을 위한 가시적 결실을 향한 길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방북 성직자 어느 누구도 남한 교회의 대표성을 지니고 북한당국의 승인 아래에 남북한 교회의 공식 접촉 임무수행을 한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반쪽인 남한 교회를 완전한 교회로 생각하여 왔으나 남한교회와 북한 교회는 둘 다 갈라진 교회에 지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한반도 안에서 1민족1교계 체제를 갖춘 완전한 교회가 되도록 연구、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 교회의 재흥을 위한 정책 결정과 대외 업무는 교황청과 긴밀한 일치를 갖는 한국 주교회의와 북한에 속한 교구의 교구장의 지도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북한 당국이 교황청에는 대화의 창구를 마련하였지만 아직까지 남한 교회에 대해서는 개방의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아 적어도 북한 교회가 국교회의 위험에서 벗어나 교황청과 일치를 이루는 교회가 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물론 북한 당국이 북한천주교가 세계 가톨릭 공동체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에 유념케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또한 남한교회는 앞으로 남북교류와 통일이 후 또는 그 이전에라도 가능한 북한교회의 재흥을 향한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께 북한 교회의 신자들이 말하듯이 자유롭게 신앙을 고백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성사생활 속에서 항상 성령의 은총을 향유하며 또한 기존 신자 발굴에만 주력하고 있는 북한교회가 복음선포와 그 결실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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