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난 가정주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자주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느꼈고 그럴 때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부님을 찾아가 그런 얘기를 하고 의논 드렸더니『믿음을 가지라』고 나무람을 하셨다고 했다.
그녀는 처녀시절 회사 돈을 몰래 챙겨서 좀 썼는데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령과 악령 속에서 악령을 생각하다보니 나 자신은 없어지고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어떤 영적인 힘의 작용으로만 보게 되었다.
남편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미친소리」그만하라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이 떨쳐버려지지 않았다.
지난해의 노사분규도 꼭 내 탓으로만 여겨졌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꼭 자신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세상일들이 나 때문에 일어난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일순이고 자신 때문에 일어날꺼라는 생각ㆍ느낌(感)이 더 지배적이었다.
생각만 하면 어디까지라도 갔다 올 수가 있었다.
낮에 만난 사람의 집에도 나 자신의 몸은 여기에 있지만 자신의 영혼은 몰을 빠져서 갔다 오는 것을 체험하기도 했다. 이제는 영(靈)의 세계는 알고 싶지도 않고 겁이 난다고 했다. 조용한 시간에는 그런 일들이 더 쉽게 일어났다.
신부님의 말씀은 믿지만 항상 봉 떠있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인간의 삶에는 누가 뭐래도 죄 있는 사람이든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세 가지 삶 즉 육체적인 삶、정신적인 삶、영혼의 삶을 살아가게 돼있다.
혹자는 영혼의 삶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며 완강히 부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암 같은 병으로 사형선고라도 받게 되면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 부인은 3가지 삶 중에 정신적인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 성령과 악령을 동시에 보내어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은 거울과 같다.
거울은 변하지 않고 항상 같지만、사람마다 자신의 정신건강(精神健康)에 따라 거울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발견할 따름이다.
이 사람에게서 보듯이 자신이 과거의 일로 죄책감속에 살게 되면 항상 자신은 벌을 받으리라는 생각(무의식적인 것이지만)을 떨치지 못한다.
그녀가 스스로 생각해도『이상하다』고 말했듯이 정신에 이상이 생겨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때는 자기가 자기를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있으나 병이 깊어지면 자신이 병든 것은 못 느끼는 반면、온통 세상이 이상하게 보인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온통 세상이 색안경 색깔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 세상은 그 색안경 색깔과는 다르다.
아자경계가 크게 약화되거나 모호해지면 세상일들이 온통 자기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며 이를 전문용어로는 관계망상(關係妄想)이라고 부른다.
노사분규가 일어난 것이 어떻게 그녀와 관계가 있단 말인가? 관계망상이 심해지면 지나가는 사람이 가래침만 뱉어도『저 사람이 내 과거를 알고 있으며 그래서 더러운 여자라고 침을 뱉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서 사람 만나기를 피하거나 과격한 성격인 경우 아무나 붙잡고 싸우려든다. 당하는 사람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만나는 격이 된다.
사람의 정신건강의 척도는 내가 병적인 면이 있는가 혹은 거의 없는가를 깨닫는 병식(病識)의 유무(有無)에 달려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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