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화 현상에 따르는 초본당의 경향
문화가 발달되고 산업과 경제의 성장에 따라 세계가 갑작스럽게 도시화 현상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고속화된 수송력과 많은 물건들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게 된 저장분야의 발달과 고도로 발전된 주댁 건축술 등이 인간으로 하여금 한 군데서 쉽게 모여 살 수 있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도시에는 문화ㆍ경제ㆍ정치ㆍ사회적인 자원과 모든 편리를 집중적으로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이 도시화 현상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혼란과 그 밖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자아내어 커다란 새로운 압력으로서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이제까지 지녀온 모든 생활 방도가 쓸모없는 것이 되어 가면서 새로운 방식이 이에 대관돼 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좀 더 구체적인 통계 면에서 고찰해 볼 때 우리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즉 1800년에는 인구 2만 이상의 도시인은 불과 전 세계 인구의 2.5%에 불과했었는데 1950년에는 21%로 비약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이는 콤퓨터에 의한 추정이지만) 2000년대에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도시인이 되고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10만이 넘는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도시화의 폭발 자체도 두렵지만 그와 함께 비인간화 현상이 수반되고 있다는 데 대해 보다 큰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이 도시화와 비인간화는 역사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벌써 우리나라에서도 싹 트고 있으며 특히 그 여독은 이미 만연돼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적 추세 안에서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변해 가야 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서울의 특수성
초문명적인 현상은 우선 대도시에서부터 일어나는데, 그것은「서울」이라는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도에서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이러한 인구 폭발적인 고장에서 우리 교회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옛 본당
개념을 가지고 사목에 임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우스운 일이다. 도시의 특성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도시인에게는 지역적인 친근감보다는 자기들의 직장이나 취미 등이 같은 사람끼리 모인다는 점이다. 농촌 같은 데서는 아직도 이웃 4촌이라는 말이 그대로 통용되지만 도시인은 그렇지가 못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도시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조차 우스운 일일지 모른다. 교통 수단이 그만큼 발달됐기 때문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모여 낙산악수를 즐긴다. (등산본당! 낚시본당!)
그리고 또 본당이 지역적인 것을 고수하면서 주일미사와 강론, 성사 집행만으로는 현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명동본당만 해도 하루에 이곳을 거쳐 가는 사람의 수효만 해도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이 되는데 이들에 대한 안내라든가 그들이 교회에 대한 보다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떠한 대책 등이 강구되어야만 하겠다. 이러한 것이 없는 사목 방침은 이후에 농촌 경제 중심 사회에 있어서의 농촌사목을 위한 형태를 그대로 20세기 후반기, 특히 도시화 폭발의 시기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그 실효는 점점 의심스런 것이 돼 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가톨릭시보 본책을 통해서 유한 바 있었다)
아무튼 현재의 본당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보다 효율적인 사목 활동을 바랄 수는 없다.
더욱이 명동대성당의 경우는 그 요구가 더욱 절실하다.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교우의 대부분이 타본당 교우들이다. (약 70%가 그러하다) 그리고 실제로 명동이라는 입지 조건으로 해서 외부에서 모든 교회에 대한 문제를 문의해 오고 있어 실적적으로 교구청이 담당해야 할 일들을 대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에 교회에 관한 문제들을 물어 오는 외부 전화만 해도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벌써부터 명동은 그러한 초본당적 특수성을 지녀 왔으며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무시하고 명동본당이라는 좁은 테두리만 생각해서 내 본당 구역 내에 거주하는 신자 혹은 교적부에 있는 교우만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이는 사목을 포기하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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