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창세기에 지구의 원형을 창조하였고 그곳에 다시 천태만상의 자연을 부여하였다. 그리고는 그 자연 속에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있을 성지를 마련해 주었다. 그 후 아담은 원죄를 짊어진 채 추방되었으며 그의 후에는 20세기 전반기까지 방황 정착 파괴 복구의 범주 속에서 계속 변증법적 과정을 반복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인류는 끊임없이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간직해 왔다. 그러나 2차대전을 치루고 난 아담의 후예는 콤퓨터와 핵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그들의 영혼에는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또 하나의 변질된 원죄를 범할 수 있는 한계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다.
1951년에 출판된 이 작품에서는 철저하게 전쟁을 고발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후의 페허와 재앙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다. 교량가옥 도시는 잿더미 속에서 재건되기 시작하지만 영혼은 정돈된 채 활발히 재건될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상처 입은 영혼이 활기를 되찾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리거나 아니면 한 번 파괴된 영혼은 영원히 복구될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암시되고 있다.
2차대전이 종말되기 직전 루마니아 전선이 작품의 출발 지점이다. 동부 전선에서 4년 간 근무한 건축가 출신의 사병 파인할스를 원점으로 해서 작품의 테마는 전개된다. 첫째로 전투지역, 그리고는 내무반 야전병원 강제수용소 등을 진열시키면서 전쟁의 공포와 허무감을 주지시키고 있다.
철모를 쓴 엄숙한 파인할스의 얼굴에는 이미 죽음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뵐은 말한다. 파인할스가 굳이 죽음을 잡으려 하지 않아도 그의 뒤에는 교수대ㆍ기관총ㆍ개스ㆍ수류탄 등이 호시탐탐하게 서서 그를 죽일 기회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인할스의 전우가 내무반 주위에서 유탄에맞아 앞가슴이 파열될 때 전쟁의 공포와 허무함은 고도에 달한다.
이때 파인할스는「천주님!」 하고 외치며 전우의 영혼을 위해 마음 속 깊이 기도를 해준다. 그러나 강제수용소에서 파인할스가 목격한 성녀 이로나의 치명은 작품의 최고도를 조성한다. 유대계 가톨릭 신자인 이로나는 23세의 아기 엄마로서 전전에는 수녀원 학교에서 성장했었다. 사형되기 직전 나찌 장교들은 그녀에게 마지막 유언을 허락한다. 그녀는 경건한 표정을 지으면서「모든 성인축일」 의 기도문을 노래한다. 이와 같이 이로나가 영혼의 승리를 예찬하는 성가를 부를 때 그녀의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민족적인 완전성 속에서는 주위의 나찌들을 제압하는 어떠한 보이지 않는 힘이 명시되고 있다.
그 힘은 다름아닌「신앙」이라고 뵐은 힘을 주어 강조하고 있다.
활발한 영혼을 간직한 채 이로나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처형된다. 이런 공포없고 성스러운 죽음 속에서 뵐 영혼의 승리와 함께 전후에 형성될 영혼의 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혼의 재건을 강렬히 요구하고 있다.
전쟁은 거의 끝났다. 파인할스는 너무나 많이 파괴되어 있는 자기의 고향「바이데스하임」을 바라본다. 역 곁에는 한 줄로 선 집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역도 역시 파괴되어 있었다. 기관차는 폭격을 맞아 철로 곁에 쓰러져 있었고 교회는 반 쪽만이 남게 되었다. 시민들은 페허를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 파인할스도 역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 그는 건축가 출신이었기에 무엇인가를 재건할 마음의 결심을 갖게 되지만 다른 평범한 건축가들과는 달리 자기가 할 일은 보다 더 차원이 높은 건축의 재건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정오의 성당종 소리가 울리자 파인할스는 모자를 벗고 두 손을 합창했다. 복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모든 시민들도 그처럼 합장을 하고 삼종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어린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파인할스는 지금 기도를 하면서도 과거와는 달리 거의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되었다. 사실 그는 별로 기도할 것이 없었다.
「파인할스! 어디에 가 있었느냐」파인할스도 이미 영혼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도시의 재건과 부흥에만 급급한 나머지 영혼의 정돈상태를 초래한 현대인의 상징인 것이다. 이 침체된 영혼이 활기를 찾아 재건되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복구될 가능성마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불변의 신앙과 휴메니티로서 영혼의 재건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혼의 재건은 뵐 혼자만의 과제가 아니고 우리들 모두의 공동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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