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율법의 근간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새로운 정신으로 재선포한 그리스도의 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람사랑을 현대생활에 비추어 분석하면 사회를 사랑하라는 것을 덧붙일 수 있다.
1계부터 3계까지는 하느님 사랑에 관한 계명이고 4계에서 6계까지는 사람사랑에 관한 계명이며 7ㆍ8ㆍ9ㆍ10계는 사회사랑에 관한 계명이다. 이것을 구약에서는「~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금지명령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구약율법의 외부적인 명령을 내면화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율법의 십계명은 시나이산 밑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준 명령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느님의 명령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 전번에 말한 대로 완성하려고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왜 모세에게 금지명령으로 사람 사랑을 표현 했을까. 그것은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쉬운 해석이 가능하다. 구약시대는 대부분 문맹의 시대였고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연법을 설명하는 데는 금지명령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자연법은 하느님의 창조이념의 표현으로서 자연 속에 새겨진 질서이며 그 질서는 생명신장을 위한 것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자연의 꽃은 생명이며 생명의 세계는 그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식물은 동물의 소유이며 동물은 인간의 소유이며 인간은 하느님의 소유이다. 그래서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살고 사람은 동물을 머고 살지만 하느님은 인간에게서 사랑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만큼 신성하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었고 싸움질을 하며 남의 재산에 손대는 등 타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십계명은 우상숭배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출애20, 13). 이 명령은 이스라엘민족 후손들에게 성문법으로 되었고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제재가 가해졌다(레위24, 17). 이 율법은 하느님께서 홍수 끝에 인간사회를 재건하기 위하여 노아와 맺으신 성약(聖約)에 포함되어 있던 원칙에 입각한 것으로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 너희는 많이 낳고 불어나 땅 가득히 퍼져라」라는 축복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것이 옛 조상들에게 내려졌던 의부행위에 관한 율법이었다.
예수께서는 살인이라는 외적행위만을 다스리는 것으로는 새 질서를 회복하기에 미흡하므로 악의 근본인 사람의 마을을 깨끗이 하는 새 법(사랑의 법)을 심기 위하여는 악한 마음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미움이다. 「자기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이다 (1 요한3, 15).
사람이 자기 외부 행동만을 제어할 때는 지났고 이제는 글도 알고 생각도 깊게 할 줄 아는 새 세대가 왔다. 「살인하지 말라」에서「분노를 품지 말라」라는 내부 윤리로 십계명 제5계를 완성하신 것이다. 분노에도 사랑의 분노가 있고 미움의 분노가 았다.
예수님의 말씀 하시는 분노는 미움의 분노에서 인간사회의 모든 악이 파생된다.
미움의 분노는 형제에 대한 경멸을 자아낸다. 그리고 경멸의 마음에서 욕설이 나온다. 「천치」「바보」「화를 내서는 하느님의 정의를 이루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야고1, 20).
형제를 욕하는 것은 사회를 악하게 물들일 뿐이다. 그러니 살인, 미움, 경멸 등은 하느님 앞에서나 인간사회에서나 단죄되어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 죄목의 나열과 그에 해당되는 법정의 나열은 이해가 안 간다.
살인은 사형, 분노는 재판, 천치라고(공동번역 바보) 욕하는 자는 중앙법정, 바보라고 욕하는 것은 불타는 지옥이다. 이 법정은 아마도 사형-지방법정-최고의회-지옥의 순일 것이다. 그런데 율법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형법재판소가 단계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사형감이라고 율법에는 있지만 어떤 법절차를 밟았는지 확실치 않고 린치(私刑)형식의 집행도 합법적이었다. 지방법정이나 중앙법정의 분간도 죄의 경중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고 재판형식도 예수의 경우와 같이 소위인민재판의 형식이 많았다.
더군다나 천치(공동번역: 바보)와 바보(미친놈)는 헤브리아어 라카(천치, 무식장이)와 그의 그리스어 번역 미친놈 또는 바보의 중복으로 두말은 우리의 말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뜻의 말이다. 다만 그들의 천치바보라는 욕설은 종교적인 뜻을 가지고 있어서 하느님을 모른다고 하는자,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 하느님께 불경스러운 자를 가리켰다(시편14, 1:94, 8: 이사32, 5~6:예레 5, 21:신명32.6). 지옥은 영원한 벌을 가리키는 것이 복음서의 뜻이지만 이 벌은 형법재판소를 거치지 않는다. 지옥이라는 말은 게헨나라는 원문인데 이 말은 힌놈계곡이란 곳으로 우상숭배자들이 인신제물을 바치는 곳이며, 불길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곳으로 구약에서는 이해하였다.
예수께서 이러한 비실재적인 형법재판소를 나열한 것은 위의 죄들이 외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벌 받을 대상이라는 것이 말씀의 요체이지만 만사를 쓸데없이 비논리적으로 묶어놓는 랍비들의 방식을 비아냥했을 지도 모른다.
하여튼 악심에 젖어있으면서 제물 바치는 일은 그다지 바쁜 일이 아니다. 형제와 앙심을 품었다면 그와 함께 사는 동안 (법정으로 갈 때에) 화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하느님의 새로운 법 완성이다. 「… 라고 옛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에서 「나」라고예수께서 하신 일인칭은 하느님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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