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극단이 가톨릭 순교성극을 공연하기는 1967년 극단「드라마센타」의「이름 없는 꽃들」에 이어 이번에 공연한「극단69」의 「김대건 신부」로 두번째가 된다. 무명작가의 작품인데 비해 「김대건 신부」(이원경 작)는 연극을 오랫동안 해왔고, 또 「이름없는 꽃들」을 연출했던 기성작가의 로작이었다. 그러나「이름없는 꽃들」이 실패했듯이 「김대건 신부」도 역시 실패작이다. 우선 「김대건 신부」(5막8장)가 실패한 원인은 첫째 희곡작품에 있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극화하기가 지난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 역사적 사건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그 인물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있기 때문인다. 그래서 잘 알려져있는 역사적 인물을 왜곡시켜 작품화하면 비난의적이 될 수 있고 사적을 충실히 그리다보면 관객에게 흥미나 감동을 못주기 쉽다.
그러니깐 이번 「김대건 신부」의 실패는 후자의 경우로서 실패한 것이다. 연극이 인생 그 자체가 아니듯이 역사극도 역사 그 자체가 아니다. 역사의 무대에서의 충실한 재현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예위작품으로서 생명을 상실한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너무 사실에 충실하려다가 실패한 좋은 표본이라 하겠다. 너무 광범한 시간을 취급했기 때문에 해설자가 등장해서 더욱 연극을 지루하게 만들었고 거기다가 90여명의 등장인물이 무대를 어지럽혔으며 많은 장면의 변화는 현대극의 요체를 잃었다. 한말로 연극의 기본공식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파국의 과정이 없어 극적 짜임새가 돼있지 않은 허술한 작품이었다. 그런 구성적 결함을 커버하기 위한「오버액션」과 소극적 난동이 도리어 신파풍으로 발전한 요인이 됐다.
좀 더 능력있는 작가였다면 김대건의 생애중 가장 극적이었던 체포로부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때까지를 높은 예술적 눈으로 잡아 승화시켰을 것이다. 연극의 본질은 갈등이다. 그러나 작품「김대건 신부」에는 갈등이 없다. 삶과 죽음, 종교와 인간, 유고와 천주교, 더 나아가서는 정의와 부의, 사랑과 미움 세력대세력의 대립 상극이 어째서 김대건에게 없었는가. 그 원인은 작가의 력량부족에 있다. 둘째로 「김대건 신부」는 순교극인데 극전체를 보고 나도 관객에게 어떤 엄숙한 종교적「카타르시스」를 일으키게 하지 못했다. 그것은 작가나 연출가가 종교적 체험이나 명상이 없는데 원인이 있다.
종교극을 반드시 종교인이 쓰는 것은 아니라도 종교적인 작품은 쓸 때는 신자이상으로 깊은 종교적 체험과 탐구가 있어야 한다. 등장인물들의 어설픈 성호의 남발은 오히려 관객의 실소만을 빚게 할뿐이었다. 즉 깊은 종교적인 관조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와 같은 현상은 대사의 비속성에도 잘 나타난다.
셋째로 순교사극으로 실패한 또 한가지 원인은 무대의 분위기에도 있다. 전혀 종교적인 냄새가 안났다. 상징적인 십자가하나 없었고 효과음악도 별로 종교적인 엄숙성을 돋보이게 못했다. 네째는 배우들의 연습부족이다. 몇몇 등장인물이 대사를 못외워서 적당히 지껄이는 즉흥대사는 극의 앙상블을 깨뜨렸고 1910년 신파극의 「구찌다데」 (구건)식 연극을 연상시켜 부쾌감을 주었다. 그와 같은 현상은 한국연극이 안고있는 병폐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하여간 이번에 수고한 극단 69의 모든 단원에게 감사를 보내지만 앞으로는 우리나라 가톨릭의 빛나는 수난사를 좀 더 높은 차원에서 극화하여 교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문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