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소유하고 있는 목자와 양에 관한 개념은 민족문화사적으로 볼 때 아라비아인들의 유목생활의 경험에서 왔다고 봄이 타당하다. (신명기62ㆍ5)
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목자는 양의 주인이며 동시에 아주 친한 친구이다. 또한 맹수들의 침입을 능히 막아낼수 있는 용사이며 (사무엘1서 17ㆍ34-3구) 자기 양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일일이 돌보아 주는 분이다. (청세기33ㆍ13~)
따라서 목자는 자기 양을 품에 안고(이사야40ㆍ11) 다니며 마치 자기 친딸같이 생각한다. (사무엘2서12ㆍ3) 그리고 목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목자의 권위는 자기 양들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에서 온것이다.
고대 바빌론이나 아씨리아 같은 근동국가의 왕들은 자기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사목하도록 위임을 받은 목자라고 생각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상호관계를 잘 보여주는 성서의 목자와 양에 대한 표현을 볼 것이다.
1, 구약성서의 목자와 양
1, 양들의 주인이요 아버지로서의 야훼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야훼가 직접 목자라고 불리우는 대목은 구약성서에서 찾아내기가 극히 드물다. 이상하게도 창세기와(49ㆍ24ㆍ48ㆍ15) 성영에서 (23ㆍ1, 80ㆍ2)각각 두번씩 야훼를 목자라고 부를뿐이라고 그 외에는 거의 없는것 같다. 혹시라도 구약의 신학자들이 이「목자」라는 명칭사용을 다음에 오실 메시아를 위하여 보류하지 않았나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야훼와 그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착한 목자와 양의 무리에 비유하여 말한 곳은 너무나 많다. 야훼는 「출에급기」에 자기백성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출할때 마치 목자가 양떼를 이끌듯이 그들을 불러내어 사막으로 인도해갔고(성영78ㆍ52) 그들이 먹고 살수있는 푸른들판으로 인도했다. (이사야40ㆍ11)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순한 양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늘 말썽을 부렸고 마치 길이들지 않은 송아지들같이 하느님앞에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이러한 불층에 대한 벌로써 결국은 타국에서 오랜기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오세아4ㆍ16)
이상에 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충실한 태도와 생활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자기 백성은 마치 목자가 양들을 우물가로 인도하고 (이사야49ㆍ10) 뿔뿔이 흩어진 양들을 애써 불러 모으듯이 하며 그의 백성은 이러한 착한 목자의 보호 아래 아무것도 아쉬울것이 없도록 한것이다. (성영23ㆍ1-4)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이 세상의 모든 인류에게 미칠것이기 때문이다.
2, 양들과 그들의 목자
구약성서에서 주님은 양들을 자기 목장에 두고 자기 종에게 맡겨준다. (성영100ㆍ3) 역사적으로 볼 때 하느님은 모이세를 통하여 자기 양들을 인도하였고(서영 77ㆍ21) 목자없는 양떼로 두지않기 위하여 요수에를 그 후계자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위를 불러내어 자기 백성을 사목하도록 했다(성영 78ㆍ70~)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 아무도 자기를 목자라고 한 사실이 없고 다만 왕정시대 이전에 있었던 판관들에게나(사무엘2서 7ㆍ7) 이교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이사야 44ㆍ28) 이러한 이름이 불리워졌음을 볼수 있다. 그래서 「목자」라는 이름은 야훼에게만 국한시키고 다음에 오실 다위의 후손인 메시아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보류했다고 봄이 좋을것 같다.
이러한 「목자」명칭 사용의 보류는 구약시대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볼 때 세말론적인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큰 요소가 되었다. 장차 야훼께서 손수 자기 양을 치시고 오직 메시아에게 이 권한을 넘겨 주실것이라는 에세키엘의 가르침도 바로 여기서 근거한다고 볼수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들인 왕들은 야훼의 뜻을 찾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양들을 인도했으며(예레미아10ㆍ21) 나중에는 양들이 산 지방으로 흩어지도록 내버려두고 자기들만을 살찌웠다. (에세키엘43ㆍ3) 그러나 장차 오실 참 목자인 메시아는 이러한 모든 실망적인 사실을 다 없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마련할 것이라는 희망에서 오는 믿음은 계속 보존되어왔다.
자카리아 선지자도 같은 뜻으로 다음에 오실 목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야훼는 불충한 왕들을 징벌하시고(자카리아10ㆍ4) 이러한 야훼의 징벌로 정화된 오직 한분의 목자가 나타날것이니 만민은 다 이 한분에게 구원의 희망을 걸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정화된 남은 한분의 참목자는 마치 말없이 끌려가는 양처럼 순한 종과 같을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세상에 흩어진 모든 양들에게 의화를 줄것이다. (이사야53ㆍ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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