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레느는 추운 겨울날「싸니」를 걷고 있었다. 발 밑에 무엇인지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자세히 살펴보고는 곧 후회했다. 그것은 피를 토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몇발자욱 앞으로 가자 또 다시 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순간부터 그녀는 이 피의 행적을 쫒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틀림없이 지독한 비참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은 죽음의 선고를 받은 자. 그러나 그리스도의 행적, 카이프에서 헤로드, 헤로드에서 빌라도, 빌라도에서「골고타」로 가는 길도 깨끗하지는 못햇으리라. 그때부터 하고 많은 눈물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길을 씻어내지 못했으니….
거의 스무발자욱마다 보이는 핏덩이가 마드레느를 인도했다. 그녀는 이미 자기 갈 길은 잊어버리고 이 낮모르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핏덩이는「조라」거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어보기 전에 벌써 로제가 거기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제는 한구석에 창문에 기대앉아 있었다. 사람의 형체만을 겨우 간직한 로제, 주름살이 주글주글 죽은 사람같은 얼굴, 이미 시체같은 그 몸에 두 눈만은 로제의 눈길이다.
그 앞에 옆구리에 손을 대고 상을 잔뜩 찌프린 피에르, 그 옆에는 헛간사건이 있던 옆집아들이 묵묵히 서있다.
『안녕하세요, 로제. 이번엔 어디서 도망쳐 나왔어요?』
마드레느는 되도록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브로또노」에서』
로제는 윙크를 하며 일그러진 미소를 띠웠다.
『열두번째 병원이지. 어때?』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창문쪽으로 돌아서 기침을 했다. 마드레느만이 그가 무엇을 뱉았는지 알고 있었다.
『이젠 남은 병원이 없단 말이야』
『있어요. 「보종」에. (청년은 병원 명단을 가리킨다) 잘 됐습니다. 여긴 내 친구가 인턴으로 있어요.』
『「보종」이라. 로제, 「보종」에서 쫓겨난 일은 없겠지?』
그는 끄덕인다.
『아무데라도 오늘 저녁내로 넣어야겠어! 그런데 어떻게 데려간다?』
피에르는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아버지의 차를 빌리겠어요』
청년은 얼굴이 붉어지며 제안했다.
『그 헛간에 넣어두는 차 말인가? 그 정도는 우리한테 할 의무가 있겠지. 아버지의 허가를 맡을 필요도 없네. 후에 여자친구한테 뽐낼려구 차를 썼다고 하면 아버지가 용서할걸세.』
『제가 로제를 거기 데려가서 그 사람들이 입원시켜 줄때까지 남아 있겠어요.』
『그래야지요.』
마드레느는 조용히 말했다.
『자 차를 끌어내게. 내가 로제를 들고 나갈테니…』
『내가 뭐 설 줄도 모르는줄 아나?』
로제가 버틴다.
『그래 자네가 사나인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지금만은 좀 가만히 있게』
피에르는 로제를 번쩍 들어안았다. 아주 가벼웠다.
『야 로제 꽤 무겁구나』
『이번엔 낫기 전에는 도망치지 않도록 해요』
마드레느는 입안이 탔다.
로제는 더러운 손수건을 입에서 떼면서 눈을 꿈뻑해 보였다.
『약속 못하겠는데』
피에르는 그를 자동차에 실었다.
『제 옆에 꼭 붙이시오. 로제 내가 너무 빨리 달린다고 생각하면 얘기하시오』
『천만에! 당신이 아무리 빨리간다 해도 나만큼 빨리 달리지는 못할걸』
죽음이 깃드린속에서 이 사람은 여전히 자랑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어린애입니다. 하느님 그를 용서해주십시오) 피에르는 속으로 기도드렸다.
『안녕, 로제. 자 깨끗한 손수건이 여기 있으니 이것을 쓰지!』
피에르는 자동차가 잿빛 풍경속으로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각일까, 자동차가 차차 조그마해지더니 마침내 녹아 없어지는것 같았다. 가슴이 젖어왔다. 자기도 모르게『로제 로제…』두마디 불렀다. 그는 희망을 걸지 않았다. 조금전에만 해도 이 가슴에 안겨있던 로제. 이제는 두번다시 보지 못하리라. 그는 아직도 그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다시 한번 그는 소리쳤다. 『로제!』
집에 돌아오는 피에르는 어느 목요일 저녁 유리창밖에 보이던 창백한 그 얼굴, 움푹 파인 그 큰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날밤 그는 열심히 밖을 찾아헤매었으나 기어이 그를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때였다면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열성있게 좀 더 끈질기게 찾을 것을!
『사랑하고 또 의욕을 가지고 해야 했을텐데… 아! 로제! 로제! … 』
그는 아직도 다 시들은 약한 그친구의 체온을 자기팔에 느낄 수 있었다. 피에르가 부엌으로 들어서자 거인같은 미쉘이 눈에 띠웠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폭발을 했다.
『아! 자네가 왔어!』
며칠전부터 미쉘은 여기오는 것을 몇번 망설였었다. 자기집에 들어갈 때마다 구박이 말이 아니다. 마누라가 아버지보다 아들에게 먹을 것을 더 많이 주며
『얘는 그래도 일을 하니까?』
할 때도 할말이 없다. 아무놈이고 후려치고 싶은 심정을 하루종일 꾹 참고 있노라니…드디어「조라」거리의 이 집에 올 결심을 했다. 유일한 그의 피신처…
『아! 자네야!』
『그래 내가 왔어』
미쉘은 울음이 터질듯한 어린애같이 최후의 용감한 미소를 띠웠다. 피에르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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