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집단적 욕구를 노래함으로써 형식주의적인 지식을 본질적인 지성의 참여로 바꾼 젊은 시인으로 나는 김지하의 첫 시집「황토」를 주시해 마지 않는다. 당시「오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 시인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문학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정치의 차원에서 문제삼을수록 그의 빛나는 풍자의식은 성급한 무지에 짓밟힌다. 김지하는「황토」를 통하여 더운 흙가슴의 생활감정을 구성진 가락으로 몰고 나온다. 민중의 참된 목마름이 시행마디 사무쳐 있다. 그의 황토는 척박한 식민지이며 남들의 삶이 네활개치는 버림받은 유형지로 파악되는데,
여기서 푸른깃대를 꽂겠다는 불붙는 그의 격정이 마침내는 희망의 대지로 우리를 공명하게 한다. T. S. 엘리어트의「황무지」보다도 김지하의 「황토」가 더 실감있게 우리의 심혼을 흔드는 이유는 시의 발상이나 언어의 율격이 민중의 품에서 나온 때문이다.
더욱이「탈」과 같은 작품에서 「오적」의 전주곡이 되는 소중한 실험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폭넓은 사회의식과 활달한 풍자의식은 그의 시를 살리는 오토바이의 앞뒤바퀴나 다를바 없다. 하지만 그의 절규는 이제까지의 소박한 리얼리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깊이있게 대지에 뿌리박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오래 전부터 토착화된 지성의 울부짖음으로 박봉우 시인은 만만찮은 저력을 과시해왔는데 년초부터「너와 나와의 통일」(「다리」Ⅰ)「누룩땅」(月刊文學Ⅰ) 「백두산」 (讀書新聞Ⅰㆍ17)으로 우리의 잠을 일깨우고 있다. 대통령의 8ㆍ15선
언을 10여년이나 앞지르는「휴전선」으로부터 그의 詩는 겨레의 공분과 조국의 비원을 한결같이 노래해 왔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모진 찬바람이 부는 스산한 역사의 마당은 따사한 혁명의 아침을 보듬는다. 너와 나와 갈라진 가슴. 너와 나와 갈라진 언어. 한줄기 빛은 한강에도 대동강에도 흘러 흘러 가는데. (「나와 나와의 통일」에서)
시인의 눈물과 사랑은 조국 통일로 쏠리고 있다. 화산과 같이 분노하면서 우리의 가난한 자유를 탓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부모지에서 살아야 하는 민중의 한을 달랜다. 어제도 서러움 오늘도 서러움 이런 누룩땅에 누가 와서 사나 이런 누룩땅에 누가 와서 꿈꾸나 언제나 한많은 그릇에 누룩땅에 누가 와서 꿈꾸나. (「누룩땅」에서)
김지하의 황토와 박봉우의 누룩땅은 동질의 것이다. 역사의 대지임을 의심치 않는다. 무궁화도 진달래도 백의에 물들게 하라. 서럽고 서러운 분단의 역사 우리 모두들 백두산에 올라라게 하라. (「백두산」에서)
이러한 직설법은 호소력이 있는 반면 창조적인 충동으로 우리를 감화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닌다. 필경 시문학은 그 이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창작과 비평」지는 겨울호부터 이문구의 장편소설「장한몽」을 연재하고 있다. 우리들 삶의 아픔을 실증하는 작가의 자세는 문학의 토착화과정에 한 이정표가 되어 줄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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